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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66) 양파도둑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06 조회수745 추천수2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leejeano)              작성일        2004-02-14 오후 6:46:52

 

2004년2월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ㅡ열왕기상12,26-32;13,33-34;마르코8,1-10ㅡ

 

    양파 도둑

                           이순의

            

ㅡ나눔ㅡ

작업장 안은 술렁거리고 있었다.

바쁘게 일하던 종업원 아저씨들이 일손을 놓고 웅성웅성 모여들었다.

그 파장이 안채에까지 퍼지고 있다.

 

트럭 두 대가 교차할 수 있는 커다란 철 대문을 들어오고, 사무실 앞마당을 거쳐 운동장 같은 작업장을 지나 우물가를 돌아서 작은 쪽문을 열어야 하는 안채에까지 외부의 소란이 전달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부엌에서 일하는 부엌데기들이 차분한 안채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있는 둥 마는 둥 늘 조용한 막내는 안채의 정 중앙에 위치한 안방에 누워 느낌으로 기척을 감지했다.

 

얼른 방에서 나와 큰 마루에 서서 부엌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을 빠끔히 열었다.

상을 놓는 툇마루에 내려서지도 않고 문설주와 미닫이문 사이로 얼굴만 밀어냈다.

부엌살림을 도맡아하시는 아주머니께서 그런 그를 올려다보시며 묻지도 않은 해답을 불러주고 있었다.

 

"그 놈을 잡아왔다고 헌다. 어린놈이 벌써 그런 짓을 해서 어쩔끄나. 혼을 내줘야 허제."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문을 닫는 둥 마는 둥 댓돌 위의 신발을 걸치고 안채의 모퉁이를 돌아서 쪽문 앞에 섰다.

아저씨들은 제 각각 한마디씩 하느라고 시끄러웠다.

 

어린 막내의 몸통이 아저씨들의 다리 사이를 비집을 때는 개구멍을 만들어 머리통만 밀어주고 있었다.

거기에는 낯익은 오빠가 가마니 위에 걸터 앉아있었다.

고개는 푹 숙이고, 가마니 아귀의 풀려진 지푸라기에 손가락을 비비꼬아 감으면서 시커먼 맨발에 검은 고무신을 신은 발길질로 시멘트 바닥을 후비고 있었다.

 

집사 아저씨가 이것저것 묻느라고 그 오빠의 눈높이만큼 허리를 구부렸지만 허사였다.

그는 아저씨의 눈을 피하느라고 고개를 이쪽으로 저쪽으로 돌려가며 어긋나고 있다.

아무 말도 얻어내지 못한 아저씨는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막내는 곧 아버지께서 나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사이 막내를 발견한 다른 아저씨는 쭈그리고 앉아 막내를 무릎에 앉혀 주었다.

사람들 사이로 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언제나 아버지의 모습이 산보다 더 크고 높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들 사이에 서신 아버지는 그 오빠에게 어떠한 말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자네들 중에 저 아이 애비가 누군지 아는 사람 있는가?"

아버지는 마을의 거의 모든 주민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름뿐만 아니라 별명만 들어도 그 집의 사는 형편을 훤히 꿰차고 있었다.

누가 말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오빠의 아비가 누구라는 대답이 들렸다.

아버지는 종업원 아저씨들께 제 자리로 돌아가 일을 계속 하도록 이르셨다.

 

아저씨들은 흩어지셨고 막내는 사무실로 향하시는 아버지를 따르는 집사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잠시 무릎을 빌려 주셨던 아저씨도 막내를 내려놓고 일자리로 돌아갔다.

그 오빠는 후비던 고무신을 가지런히 하고, 기가 죽은 손은 무릎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의 옆에는 잎사귀도 사그라지지 않은 덜 여문 싱싱한 양파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양파 도둑이었다.

 

아직 뽑아낼 시기가 멀었는데 뒤뜰 밭에 심어둔 양파가 자꾸 없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누군가 지나가다가 막걸리 안주삼아 손을 댔을 거라고 안심을 했다.

그런데 횟수는 줄지 않고 잦은 손버릇에 두둑 채 여기저기 비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좀 심하다 싶으셨는지 어느 날부터 종업원 아저씨 한분께 그 도둑을 잡아오라고 명을 내리셨다.

 

그러나 꼭두새벽에 훔쳐 가는지 아니면 아저씨께서 식사라도 하시러 오실 때 훔쳐 가는지 날쌘 그 도둑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교대 근무 조를 짜셨다.

아저씨들은 그렇게 작은 오빠 한사람 때문에 보초병이 된 것이다.

 

그 도둑이 여물지도 않은 양파를 뽑다가 드디어 잡혀 온 것이다.

불침번을 선 아저씨들의 불편한 심기뿐만 아니라 호기심은 쉽게 가라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막내는 그 오빠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 했다.

 

아버지로 인해서 아저씨들께 흠씬 두들겨 맞았는지?

애비한테 끌려가서 부자지간에 아버지 앞에서 손이 발되게 빌었는지?

아버지께 양파 값을 변상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막내는 겁에 질린 그 오빠의 시꺼먼 손과 검은 고무신이 가지런히 모아진 가마니 위의 석고상을 끝으로 기억을 멈춘 것이다.

 

막내가 풋 냄새 풀풀 나는 스물한 살 처녀였을 때 산 보다 커보였던 아버지가 산 속으로 들어 가셨다.

달랑 홑 겹 나무 관에 몸을 누이고 오열하는 곡을 들으며 그토록 예뻐하시던 막내가 올리는 절도 마다하고 가셔버렸다.

남아있는 사람끼리는 할 말이 많았다.

가신분에 대한 아쉬움과 남겨주신 좋고 그른 기억들만이 아버지의 자리를 휘젓고 있었다.

 

막내는 아버지가 가신 한 참 뒤에 그 오빠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집사 아저씨께서 막걸리 사발을 못 이기도록 만취 하셔서 눈물이야 콧물이야 하시며 꼬부라진 혀에 푸념을 담으셨다.

오랜 동안 양아치 건달을 하던 아저씨를 사람 좀 만들어 달라고 아버지께 데려온 분은 그의 누님이었다.

 

"내는 말이제잉. 경호원이라고 헝께 왔는디 말이여, 촌 동네서 뭔 경호헐 껏시 있써불것능가잉? 나럴 사람 맹글껏다고 맹목상이로다가 부처분 구실인디 이, 나가 말이제잉 어르신 한테 와서도 술 처묵고 땡깡 놓고 해 싸부렀네 잉!"라고 시작된 집사 아저씨의 가슴 후비는 여한은 자식인 우리들 보다 더 섧게 술 사발에 넘쳐나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 날에서야 알았다.

 

아버지는 그 오빠의 아비이름 석자를 듣고 사무실로 가셔서 집사 아저씨께 명을 내리셨다고 한다.

"저 아이가 양파를 훔친 것은 당연지사네. 저 놈 집에 먹을 것이 없는디, 그거라도 쪄서 먹었던가 보네. 자네가 저 뽑은 양파도 들어다 주고, 일꾼을 시켜서 식량을 지게에 져다 주고 오게. 가난한 집의 양파를 훔치지 않고 우리 집 양파를 훔쳤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날 이후 양파 밭의 양파는 뽑혀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아저씨는 그런 모습의 아버지를 건달 양아치였던 자신이 수 없는 변화를 겪고 다듬을 때마다 인생을 살아가는 스승으로 모셔왔던 것이다.

집사 아저씨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런 일을 하러 다니신 것이다.

 

지금은 어린막내의 나이가 아버지께서 산으로 가셨던 때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어마어마했던 친정집은 이제 기관이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 기억들은 막내에게 영원한 기쁜 소식으로 새겨져 있다.

 

ㅡ제자들은 시키는 대로 나누어 주었다. 마르코8,1-10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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