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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면-룻기6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09 조회수720 추천수6 반대(0) 신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면-룻기6

 <생명의 말씀>   
  룻이 저녁 때까지 주운 이삭을 털어 보니 보리가 한 에바나 되었다. 룻은 그것을 메고 마을로 돌아 가 시어머니에게 보이고 나서, 배불리 먹고 남겨 온 음식도 꺼내 드렸다. 시어머니가 물었다. "오늘 어디에서 이삭을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했느냐? 너에게 이렇게도 마음을 써 주신 그분이 복을 받지 못하면 누가 받겠느냐?" 룻이 "오늘 제가 이삭을 주운 밭 주인은 보아즈라고 하더군요." 하며 자기가 누구네 밭에서 이삭을 주웠는지를 시어머니에게 밝히자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말했다. "그분은 산 사람에게나 죽은 사람에게나 한결같이 고맙게 대하시는구나. 그분이 야훼께 복받지 못하면, 누가 복을 받겠느냐? 그분은 우리와는 가까운 일가이다. 우리를 떠맡아 줄 사람 가운데 한 분이다." 룻이 시어머니에게, 보아즈가 추수가 끝날 때까지 자기네 집 아낙네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도록 하였다고 말하니 나오미는 "악아, 네가 그 댁 아낙네들과 함께 일하러 나가게 되었다니, 참 잘 되었다. 다른 밭에 갔다가 남자들에게 욕을 당할 염려가 없게 되었구나." 하고 며느리에게 말했다. 이리하여 룻은 보리와 밀 추수가 끝날 때까지 보아즈 집안의 아낙네들과 어울려 다니며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았다. (룻 2:17-2:23)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룻은 그날 밭에서 저녁까지 일했습니다. 하루종일 일한 것입니다.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의 경우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룻이 그날 주워온 곡식은 하루 분량이 아니었습니다.. 룻이 그 날 모아온 보리의 양은 한 에바나 되었는데 에바는 열 명이 하룻동안 먹을 수 있는 분량이기 때문입니다.

 추수 밭에 나가서 이방인 여자가 아무리 열심히 떨어진 이삭을 주워 모은다고 해도 열 명이 먹을 분량만큼 이삭을 모아 올 수는 없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 밭 주인 보아즈의 호의와 배려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 사건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침에 무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면 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 룻은 저녁이 되어서 거의 횡재에 가까운 일을 겪었고 그 모든 일을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나오미는 호의를 베풀어준 보아즈에게 복을 빌면서 하느님께서 자기 고부(姑婦)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모압 출신의 이방인 여자 룻이 자기 고향을 떠나서 이전에는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닌 배타적 선민의식 때문에 룻이 어딜가더라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룻에게서는 불평이나 원망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자기가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일 뿐입니다.

 룻의 이야기를 깊이 묵상하면서 스티븐 코비의 저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생각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코비는 제 1습관에서 '주도적이 되라'는 명제를 주고 주도성의 정도를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영향력의 원'과 '관심의 원'의 예를 들어 주도적이 되는 길을 설명합니다.

 이는 우리가 각자 광범위한 관심의 영역을 가지고 있는데 이 '관심의 원' 안에 들어있는 내용을 살펴 보면, 그 내용물들 중 우리가 전혀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과 또 우리가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것들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자의 것을 '관심의 원' 내에 '영향력의 원'으로 묶어 전자의 것과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 영역 중 어디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시키는가를 살펴보변 우리의 주도성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주도적인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영향력의 원' 안에 집중시키면서 자기가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중점적으로 해서 '영향력의 원'을 확대시키는 반면 주도적이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관심의 원'에 집중하면서 일을 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약점, 환경 상의 문제, 자신이 통제 불가능한 여건 등을 원망하고 한탄한다는 것입니다.

 '이거는 이래서 안되고, 이걸 하고 싶은데 내가 속한 공동체가 이래서 안되고....' 등등의 원망만 한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결국 나중에는 자기의 '영향력의 원'까지도 축소시킨다고 합니다. 별 것 아닌 이야기 같지만 아주 사소한 차이에서 축복받고 성공하는 인생과 망하는 인생이 결정된다는 코비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환경이나 여건을 탓하지 않고 자기의 '영향력의 원'에 집중하여 성공하는 예를 수천년 전 사람 룻에게서 너무나 감동적으로 발견하게 됩니다. 룻은 자기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기쁘고 감사하게 합니다. 바울로 사도의 데살로니카 전서의 말씀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를 구약에서 동일하게 발견하는 것만 같습니다.

 룻기를 계속 읽어 가시다보면 알겠지만 룻은 나오미가 '우리를 떠맡아 줄 사람 가운데 한 분이다.'라고 언급하는 보아즈의 부인이 됩니다. 그리고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됩니다. 아마 룻도 처음부터 보아스의 부인이 되기를 바랬고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기를 바랬다면 아마 열 받고 화가 나서 일꾼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며 보리줍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했고 하느님께서는 그런 룻에게 엄청나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코비가 제시하는 '영향력의 원' 과 '관심의 원'에서 강조하는 것은 '영향력의 원'에 집중할 때 점차로 '영향력의 원'이 확대되어 자기의 통제 범위 밖인 '관심의 원' 안에 속하는 것들이 '영향력의 원'안에 들어 온다는 세상에서의 성공의 원리입니다.

 참으로 탁월한 관찰의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룻의 삶을 보면 하느님의 복은 그런 세상의 원리를 훨씬 뛰어 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 여인 룻에게는 보아즈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 도저히 자기 '관심의 원' 안에 있는 내용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진실되게 경배하며 그분을 섬기면서 자기 '영향력의 원'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관심의 원'의 것을 선물로 주시는 것은 물론 아예 인간이 관심조차 가질 수 없었던 '무관심의 영역'에 있는 것들을 축복의 선물로 주십니다. 짧지만 룻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당신을 진실되게 따르려는 자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과 복을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내게 맡겨진 작은 일에 기쁘게 충성하는 것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했으니 앞으로 네게 큰 일을 맡기리라'하신 신약의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룻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축복을 받은 사람인 창세기의 요셉의 삶도 각자 묵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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