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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의 아들도 고난받을 것이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13 조회수528 추천수3 반대(0) 신고
 
 

사람의 아들도 고난받을 것이다 - 윤경재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마태 17,10-13)

 

 유대인 구약 정경은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로 구성됩니다. 예언서는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로 나누어지고, 대예언서 3권과 12책이라 부르는 소예언서가 있습니다. 12책 중 말라키 예언서 3,1에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3,23에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 유대 정경에 속하지 않지만 집회서 48,1-11에서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신(엘리야)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집회 48,10)

 율법학자들은 죽지 않고 승천한 엘리야가 주님의 날에 앞서 사자로 올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비록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고 다녔지만, 그를 엘리야로 믿지 않았습니다. 큰 이적을 보여주기는커녕 아무 힘없이 이방인 봉분왕인 헤로데 안티파스 에게 참수당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구약에서 예언한 사자가 아니고 메시아 역시 오시려면 멀었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고난받는 ‘주님의 종’의 노래에 등장하는 ‘주님의 종’이 메시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고난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 예언하셨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죽임을 당한 것도 고난받는 종의 모습을 유비한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율법학자들이 생각했던 메시아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메시아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었기에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을 치욕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죽지 않고 승천한 엘리야는 그 어떤 예언자보다 뛰어난 분이며 하느님의 뜻을 전달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분이라야 자기의 민족을 영광스럽게 재건하실 분이라고 여겼습니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성공만을 바라보는 인간의 좁은 소견에 갇혀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헤아려 볼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다시금 살펴보라고 요청하시며 너희가 눈여겨보지는 않았지만 이미 예언서에 나타나 있다고 여러 번 강조하셨습니다.

 제 살을 베어내는 아픔을 겪어야 더 큰 영광이 온다는 아이러니 한 진리를 누구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없애야 더 큰 자기를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하느님께서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죽어야 사는 엄청난 진리를 열어 보이신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성공만을 제일 앞세우고 있습니다. 실패와 아픔은 저급하고 못난 것이며 이차적인 가치라고 주장합니다. 성공을 앞세우는 세대에서는 오히려 아픔을 설명할 줄 알고 실패에 고난받는 세대에는 용기를 북돋아야 하는 것이 예언직을 제대로 수행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성공이 더 강조되었습니다. 지금 세대는 그 정도가 더 심합니다. 그래서 실패한 자는 더 비참하게 느끼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때도 있습니다. 실패한 자를 구원하는 방법이 성공학을 내세우는 근거가 될까요?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더 느끼게 하지 않을까요? 성공과 실패 차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를 열어 보여야 합니다. 바로 희생과 순명의 고귀함입니다. 사람들에게 성공을 말하면 우선은 위로를 주겠지요. 그러나 더 높은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 눈 감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신앙의 아픔은 순명에서 잘 드러납니다. 교회의 일원으로 하느님 나라를 성취하려면 가난과 정결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순명의 덕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덕은 순명하는 데에 있습니다. 

 지극히 가난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기다리며 합당하게 갖추어야 할 우리의 모습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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