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자유친과 효의 정신 - 윤경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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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경재 | 작성일2008-12-16 | 조회수691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부자유친과 효의 정신 - 윤경재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마태 21,28-32)
인간사에서 효만큼 한 인격을 키워주는 요소도 드뭅니다. 인간 공동체의 기본 단위로서 가정은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출발점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화목을 이루어야 할 가정이 그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구성원 탓에 깨지는 때가 자주 있습니다. 무엇보다 근본이 되는 것은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이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무척 중요합니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부모자식간의 효를 강조합니다. 이 효가 한 가정의 평안을 유지하는 수단에서 벗어나 한 인간의 인격을 나타내는 척도로서 또 인격수양의 방법으로 여겨졌습니다.
효의 문제가 후대에 가서 형식적이고 권위주의적으로 흘러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억압수단처럼 탈색하였지만, 공자는 효의 정신을 어짊(仁)을 베푸는 한 방법으로 보았습니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이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수신에서 부모와 형제간에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부모 된 도리로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을 자식 된 도리로는 효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자간의 문제는 자식이 어느 정도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논어에서는 단순히 부모를 봉양하는 것만으로 효를 실천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저 일이 생겼을 때 젊은이가 나서서 해결하고 음식을 우선으로 대접하는 것도 효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얼굴로만 효하는 것도 곤란하다(色難)고 말합니다.
공자께서 가장 칭찬하는 효의 정신은 이인(里仁)편 18장에 나옵니다. 오늘 복음 내용처럼 부자간에 어떤 이견이 생겼을 때 자식 된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부모를 섬길 때 간곡히 건의하고 수용하지 않으려 하시더라도 여전히 존경하고 거스르지 않아야 하며, 애쓰되 원망하지는 말아야 한다.”(子曰 事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라고 했습니다.
즉, 이견이 생기면 기회를 봐서 건의해 보고 그래도 뜻을 주장하시고 굽히지 않으시면, 행동으로는 더욱 존경하는 자세로 뜻을 어기지 않고 따르며, 마음으로는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가짐까지 경계한 점이 특별합니다.
공자께서 강조하시는 '노이불원(勞而不怨)의 마음가짐'을 살펴보는 것이 오늘 복음 말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 중에 원망하는 마음처럼 쉽게 빠져드는 유혹이 없습니다. 원망은 모든 탓을 밖으로 돌리는 행위입니다. 자기와 남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자기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편견에 빠지는 것입니다. 제 탓이 아니라 남 탓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원망이 깊어지면 자기마저도 부정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책임회피이며 이율배반이 되는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는 투사와 퇴행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수고로움은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 지우는 것이며 자기가 먼저 변하고자 하는 자세입니다. 자기 회개이며 자기 긍정이며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 결국 남과 내가 하나로 일치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현대인들이 겪는 마음의 병이 투사와 퇴행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심리학의 상식입니다. 이런 몹쓸 병이 출발하는 곳이 바로 가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논어 말씀을 통해서도 깨닫게 됩니다. 가장 끈끈해야 할 관계가 또한 깨어지기 쉽다는 것을 잘 아셨고 그 관계의 유지가 인간사의 근본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빠라 부르라고 가르쳐주신 예수님의 뜻이 과연 어떤 것인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부자유친)을 핑계로 우리가 지켜야 할 효의 정신을 잃지 말라는 분부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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