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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17 조회수1,147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
 
 
 
 The desired of all nations will come,
and I will fill this house with glory.
(Hag.2.7)
 
 
제1독서 창세 49,1-2.8-10
복음 마태오 1,1-17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장난감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특가판매로 소방차 장난감을 파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 소방차 장난감은 자기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었지요. 그래서 그 가게에 들어가 소방차 장난감이 얼마인지를 물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만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생각해보니 가격이 좀 비싼 것 같아서 깎아달라고 했지요. 그러자 8천원만 내라고 이야기하네요. 그 가격도 비싸다면서 더 깎아달라고 한 결과 결국은 7천원에 자기 자녀에게 줄 소방차 장난감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장난감 구입으로 인해서 행복할까요? 행복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만 원짜리 장난감을 7천원에 구입했으니 행복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자기 자녀에게 선물을 해서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사람은 행복하지 않았답니다. 왜냐하면 ‘7천원에 이 장난감을 준 것을 보면, 가격이 더 쌀 거야. 좀 더 싸게 살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을 갖기 때문이랍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행복은 이미 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는 내 마음이 이미 와 있는 행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지금 우리들은 대림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이 대림시기는 기다림의 시기라고 말하지요. 그렇다면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가요? 아기 예수님?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예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고 했는데,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뭘 또 기다립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왕 대축일 이후 잠시 이 세상을 떠나서 대림시기를 보낸 다음 성탄 때 다시 오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그렇다면 대림시기에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요? 오히려 예수님 측에서의 기다림이 아닐까요? 즉,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우리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결국 대림절은 이미 와 계시는 그분의 현존을 더 가까이 느끼는 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오늘 복음의 족보가 조금 이해가 됩니다. 이 족보를 보면서 어떤 이스라엘 사람은 불행한 자기 조상의 역사에 불평과 불만을 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족보의 의미는 그것이 아니지요. 오히려 역사의 흐림 안에서 메시아가 탄생하신 것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똑같은 족보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똑같은 대림시기를 살면서도 다른 마음가짐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바로 앞서도 말했듯이, 이미 와 계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데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때야 우리들은 참된 대림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차갑게 느껴지면, 세상을 따뜻하게 해줄 불을 지펴라!(루시 라콤)




부족함과 행복(‘좋은생각’ 중에서)
 
행복이란 만족한 삶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만족할 수 있으면 무엇을 먹든, 무엇을 입든, 어떤 일을 하든 그건 행복한 삶입니다.

우리의 불행은 결핍에 있기보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결핍감에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상대적인 결핍감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사람들이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연설을 듣고도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가 그것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들은 완벽하고 만족할 만한 상태에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입니다. 재산이든 외모든 명예든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상태에 있으면 바로 그것 때문에 근심과 불안과 긴장과 불행이 교차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적당히 모자란 가운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의 삶 속에 행복이 있다고 플라톤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늘 없는것,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되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마음에서 생긴다는 것을 그분들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Song Of The Reed- Tim Mac Brian
 Secret Garden - You raise m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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