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열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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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대 | 작성일2008-12-18 | 조회수62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이며 철학자이고 과학자이고 신비주의자였던
테야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 1881-1955)은
왜 성실하고 착한 그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지 않느냐고 질문하곤 했다.
그가 얻은 답은 도덕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동정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즉 그는 사람들이 제대로 하느님에 관하여 듣지 못했기 때문에
믿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떤 이유에서든 신앙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신앙서적을 쓰려고 애썼다.
그가 하느님을 향하여 절규했던 말은 유명하다.
“주여, 절망 속에서 구원을 외치는 당신의 피조물들을 보십시오.
진정으로 당신이 계시다면, 그들에게 당신이 해주어야 할 일은 당신의 눈 빛을,
당신의 옷자락을 살짝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왜 마다하십니까?”
오늘날 성실하고 착한 많은 사람들이 참된 신앙과 교회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분명한 것을 제외한, 애매모호한 모든 것에 있게 마련인
다원론적인 생각들, 모든 계층의 가족과 공동체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개인주의 문화,
대중문화와 지식인세계에 팽배해 있는 반(反) 교회 정서,
개인적인 기도와 경건함 속에서 신앙을 찾으려는 사람들과
정의에서 신앙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뿌리 깊은 갈등,
교회 자체 내에서까지도 의로움 발견에 지쳐있는 등의 많은 이유가 있다.
또한 우리 자식들에게 신앙을 물려주고 싶어도
고분고분 말을 듣고 신앙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플라톤이 말했다.
“우리는 신(神)들로부터 광기(狂氣)를 받아 생명의 불이 지펴진 존재들이다.
그 광기로 우리는 위대한 사랑을 할 수 있으며, 광기의 불씨를 영원히 존속시키며,
거룩한 존재를 관상할 수 있게 된다고 믿고 있다.
우리의 영혼은 저 바깥 어디선가에서 온 것이며,
저 바깥 너머에는 그 영혼의 불꽃이 우리 속에 만들어내는 갈망과 소망을 통해
우리를 그 불꽃으로 다시 끌고 가려고 애쓰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불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이 갈망을 종교적으로 순결과 신비감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쉬지 못하는 이 병(病)은
궁극적으로 우리 안에서 하느님을 애타게 찾음으로써 생기는 병이다.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는 이 에로스를 아주 적절히 표현하였다.
“주님, 당신을 위하여 저희들을 만드셨나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쉴 수 있을 때까지 쉬지 못할 것이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이 광기(狂氣)나 갈망(渴望)은 열정(熱情, enthusiasm)을 가리킨다.
‘enthusiasm’이라는 단어는 그리스 어 ‘enthusiasmos’에서 나온 아주 영적인 단어로
‘신성한 영감이나 하느님의 현존을 느껴 갖는 영감이나 홀림’을 뜻한다.
접두사 ‘en’은 영어 ‘from’에 해당되며 ‘Theos’는 ‘하느님’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광신자(enthusiasts)는 ‘신에게 홀린 사람’을 뜻하였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는 ‘열정 덩어리’였다.
열정은 ‘하느님의 선물’로
우리들의 삶 속에
‘흥분, 정열, 긴장, 아픔, 연애감정, 성 욕구, 흥미, 쾌락, 인정’을 가져오게 한다.
따라서 삶 속에 열정이 없으면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우리 모두 열정을 갖고 신(神)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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