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물개 신부'' 의 변명 - 주상배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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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8-12-18 | 조회수764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물개 신부'' 의 변명
군종신부로서 전방에 근무하면서 어느 성당에 기거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곳 어린이들, 특히 중학생 녀석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건 내가 원래 남자답게 잘생긴(?)탓도 있겠지만 계급 높은 장교 분들이나 연로한 본당 교우들까지 깍듯이 대접해 주는 것이 퍽 부러웠던 것 같다.
주일미사에 나오는 그 씩씩하고도 늠름한 군인 아저씨들이 내 말 한 마디에 행동체계가 서는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간혹 섞여 있는 미군들조차도 나에게 존경을 표시했고 내가 서툴게나마 그들과 한두 마디 주고받으며 웃는 것을 볼 때, 영어도 유창한 줄로 알고 그들 딴에는 내가 아주 만능 재주꾼으로 여겨진 모양이다.
사실.. 나도 어떤 때는 번쩍이는 다이아몬드 대위 계급장을 어깨에 단 군복 차림으로 꼬마들을 지프차에 태우고 초소 앞을 지나게 되면 부동자세를 취한 헌병으로부터 씩씩하고도 절도 있는 거수경례를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괜히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뒤에 탄 녀석들이 틀림없이 봤을 테니 나중에 친구들한테 좀 떠들어 주었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도 있었다.
어느 주말 오후, 녀석들이 우르르 내 방으로 몰려왔다. 연유인즉, 내가 무슨 운동을 잘 하는지 알아 맞추기 내기였던 것이다.
"신부님은 무슨 운동을 잘하시죠?"
"응..., 난 말이야..., 어, 저 스케이트 있지? 그거 잘 타지."
나는 얼버무려 위기를 잘 모면했고 그들의 내기는 결국 시시하게 끝났다. 얼떨결에 대답한 거지만 퍽 잘 대답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배구나 탁구라고 하면 당장 시험해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시하게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 나의 큰 실수였음을 깨달은 것은 그해 어느 추운 날이었다. 얼음을 지쳐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치 못하고 스케이트장엘 갔다. 워낙 자신이 없고 타인이 의식되어 망설였지만 교우들은 없는 것 같아 용기를 내었다.
그러나 번번이 곰처럼 둔하게 ''쿵!''하고 얼음 위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자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와하하하!''하고 웃는 소리가 나더니 녀석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그만 홍당무가 되어버렸다.
어느 구석에선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지켜보았을 것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엉금엉금 기다시하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그 녀석들을 향해 웃어른의 실수에 그렇게 크게 웃어대는 것은 무례한 것이라고 준엄하게(?) 나무랐다. 또 엄포도 놓았다.
"지금 너희들이 본 것은 없었던 걸로 해. 만일 이 사실은 다른 애들한테 얘기한다거나 집에 가서 얘기했다가 나한테 알려지면 그냥 두지 않겠다. 알겠나?"
그렇다고 그냥 물러나기엔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얘들아! 사실 내가 진짜 잘하는 것은 수영이란 말이야! 그건 내가 기차게 하는 건데 지금 당장 보여줄 수 없는게 정말 안타깝구나. 내 과거 학창 시절의 별명이 뭔 줄 모르지? 뭐였겠어? 물개, 물개였단 말이야!"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회유책도 썼다.
"자, 가자! 오뎅집으로..., ''
녀석들은 약속을 꼭 지켜줄 것을 다짐하는 대신 내 주머니 사정은 봐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톡톡 털렸던 것이다.
내가 그때 수영만큼은 잘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강조한 것은, 여름이 오기 전에 다른 부대로 이동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된다던 이동은 되지 않았고 그 해 여름을 거기서 맞게 되었다.
본당신부님께서 중학생들을 데리고 물가에 가서 하루를 즐기고 오라는 분부가 계셨다.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아이들을 데리고 강가로 갔다.
수영복은 입었지만 옷을 봐 준다는 핑계로 그들이 수영할 땐 물에 들어가지 않고 그들이 나왔을 때만 혼자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 것처럼 팔로 물을 가르며 다리론 빨리빨리 걸어갔다.
녀석들이 속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속으로 ‘바보 같은 녀석들…,’ 하면서 더욱 멋져 보이는 폼으로 더욱 빠르게 걸었다. 그러다 그만 실수로 깊은 곳에 빠지게 되어 허우적거렸다.
사람 살리라는 소리는 차마 못 지르고, 단지 “어, 어!” 소리만 내며 그만 물을 꼴깍꼴깍 먹었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친다는데…,
체면이 말씀이 아닌 웃지 못 할 희극을 연출했지만, 요행이 목숨은 부지했다. 그 때 둘러섰던 녀석들은 놀리듯이 말했다.
“신부님, 물개는 원래 물을 잘 먹잖아요. 그리고 이곳엔 오뎅집도 없으니 안심 하세요.”
이 일이 있은 후, 성당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가운데는 나를 보면 싱글싱글 웃는 녀석들이 많아졌다.
“야! 임마, 왜 웃어?”
“신부님, 제 마음대로 웃지도 못한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능청을 떠는 녀석들에게 나는 꼼짝 못하게 되었다.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한두 번 얼렁뚱땅 한 것이 그만, 나를 이 지경에까지 몰아가다니…,
그러니 여러분, 우리 이런 일이 없도록 솔직하게 살아갑시다.
- [치마 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주상배 안드레아 광장동 주임 신부)
Stepping On The Rainy Street - The day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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