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12.18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예레23,5-8 마태1,18-24
"존재에 뿌리박은 사람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식탁에서 말씀과 성체를 받아먹고자
아침마다 미사에 참석하는 가난한 우리들입니다.
저의 매일 강론 역시
주님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조각을 줍듯 참 가난한 마음으로 씁니다.
더불어 우리는 존재에 뿌리박은 사람들입니다.
매일 미사를 통해 주님의 존재에 깊이 뿌리박는 우리들입니다.
아침 성무일도 시 마음에 와 닿은 시편 구절입니다.
“우리 인생은 햇풀과 같이 덧없이 지나가고,
하느님은 영원히 계시도다.”
“모든 이교 백성들이 그분 앞에는 없는 것과 같고
그분께는 허무와 공허로 여겨지는 도다.”
하느님을 떠난 인생들,
햇풀과 같이 덧없이 지나가고 허무와 공허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마침 ‘렘브란트’ 전기를 읽다가 그를 돌보았던
하녀 ‘헨드리키’에 대한 묘사 한 구절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그녀는 진정 존재에 뿌리박고 있었다.’
존재에 뿌리박고 있다는 말은 바로 하느님 안에 정주하고 있다는,
하느님 중심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느님 존재에 뿌리박고 있을 때
허무와 공허의 어둠은 사라져 영원이요 충만함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인들
바로 하느님 존재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존재에 뿌리박고 있는 사람들,
예술작품들은 모두 우리를 비춰주는 하느님의 거울들입니다.
고백성사 때나 면담 때
저는 이런 존재에 뿌리박고 있는 신자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요셉 성인은 바로 존재에 깊이 뿌리내린
하느님의 거울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침묵, 들음, 순종을 비춰주는
하느님의 거울 같은 요셉 성인입니다.
존재에 뿌리박고 있는 사람,
바로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하는 다윗을 위한 의로운 싹 같은 사람입니다.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사람들이 그이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바로 탄생하실 그리스도 예수님뿐 아니라
요셉은 물론 존재에 뿌리박고 있는 모든 이들을 지칭합니다.
오늘 복음의 다윗의 자손 요셉 역시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얼마나 깊이 하느님 존재에 뿌리박고 있는 요셉인지요.
요셉 성인은 무엇보다 침묵과 들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존재에 깊이 뿌리내릴수록
말은 적어져 침묵에 이르고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 성인의 마리아에 대한 한없이 넓고 깊은 배려의 침묵이 감동적입니다.
이런 침묵의 사람 요셉에게 계시된 주님의 말씀이요,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취되는 이사야 예언입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라 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도 사람의 협조 없이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요셉 성인의 순종의 협조가 있어
임마누엘 구세주 탄생이 가능했습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하느님 존재에 깊이 뿌리박는 시간이자,
순종의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모심으로
우리 역시 임마누엘이 되는 복된 시간입니다.
“이 대림의 시기에 정의가 꽃피게 하소서.
큰 평화가 영원히 꽃피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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