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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구무언(有口無言)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0 조회수766 추천수5 반대(0) 신고
 

 
 
 
 
 
 
독서: 판관 13, 2-7. 24-25
복음: 루가 1, 5-25

이사악, 사무엘, 삼손, 세례자 요한,
이들은 모두 아기를 못 낳는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들이다.

긴긴 세월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날,
그들 부모의 심정은 아마도 가슴이 터질 듯한 환희에 휩싸였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 즈가리야가 이같은 기쁜 소식을 접하고 있다.

그 기쁜 소식을 어서 빨리 들려주라고 주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내려보내셨다.
아무데서나 아무때에나 그런 소식을 듣게 되면 혹시라도 못 믿어워할까봐
장소와 시간까지도 용의주도하게 선택하셨다.

일생에 한번 걸릴까 말까한 분향의 행운까지 얻게 하시고,
천사가 나타나도 될법한 깊숙한 지성소에서,
그들 부부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복음을 들려주었던 것이다.

더구나 태어날 아이는 평범한 아이가 아닌
구세주의 길을 준비할 하느님의 특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민족 전체가 고대하던 아기였음을 알았더라면,
즈가리야는 그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기쁨이었다.

그런데 환호성을 올려야 할 기쁨의 정점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믿을 수 있는 징표까지 달라고 한다면
기쁨의 전달자, 가브리엘 천사는 얼마나 기운이 빠졌을까?

그리고 그가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사제였기에
천사의 실망은 더욱 컸으리라.

오늘 독서에서 후일 삼손을 낳을 이름없는 여인,
마노아의 부인조차도 징표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즈가리야가 벙어리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랜 세월 계명과 규율을 어김없이 지키며 살았건만
정작 하느님의 전능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의 참회의 기간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청하지 않아도 눈에 보여졌을 표징,
엘리사벳의 배가 점점 불러오는 동안
그는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천사의 벌이라기 보다는,
바로 그 자신의 속죄의 표식이 아니었을까?

즈가리야를 비웃기는 쉽지만
나 역시 간구하는 내용이 정작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그 시기와 방법은 주님께서 최상의 것으로 선택하실 거라고 믿고있는지.
자성해 볼 일이다. (--;;)

열달 동안의 참회의 침묵은
아기가 태어나고도.
즉 하느님 약속의 실현을 직접 눈으로 보고도.
다시 팔일 동안이나 지속된다.

그리고는 드디어 터져 나온 찬미가,
"즈가리야의 노래"! 
그 안에서도 눈물겨운 외침,
"아가야!"(1,76)

즈가리야가 열달 동안,
마음 속으로만 외쳐봤을 그 한마디.

구세주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도
가슴 벅차게 불러봐야 할 "아가야!"다.

그만큼 간절히 기다렸는가?
그만큼 절실하게 참회했는가?
그리고 내게 오실 구원의 그 약속,
그 실현이 머지않았음을 참말로 확신하는가?
 
 
 
Genealogica Chr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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