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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의 이름은 요한' - 12.2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3 조회수458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12.23 대림 제4주간 화요일
                                                
말라3,1-4.23-24 루카1,57-66

                                                          
 
 
 
'그의 이름은 요한'
 


‘그의 이름은 요한’,
다그치는 이들의 물음에 대한 즈카르야의 답입니다.
 
요한은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시다.’
또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들 또한 영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인
‘요한’임을 깨닫게 됩니다.
 
존재를 나타내는 이름 안에
이미 분리할 수 없이
하느님이 자리 잡고 계심을 봅니다.
 
이미 요한의 삶에 하느님이 그 중심이자
삶의 의미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두 단어, ‘알렐루야’와 ‘아멘’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합니다.
 
성경뿐 아니라 믿는 이들의 우리 삶도
알렐루야-찬미와 아멘-감사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우리도 매일 성무일도 때마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로 끝맺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삶의 모두이자 의미입니다.

하느님을 잊어 허무요 방황입니다.
하느님 빠진 사람, 영혼 없는 사람이요, 눈 없는 사람입니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다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영혼이자 눈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그렇습니다.

“안됩니다. 요한이라 불러야 합니다.”

하느님의 선물로 직감한 엘리사벳의 단호한 주장입니다.
 
해산달이 차서 아들 요한을 낳았을 때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합니다.
 
바로 엘리사벳의 이웃과 친척들 역시
직감적으로 요한을 하느님의 선물로 알아챘음을 의미합니다.

신실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예나 이제나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때가 되자
말라기 예언자를 통해 하신 약속을 실현시키는 하느님이십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우리에 앞서 길을 닦은 요한을 비롯한 무수한 예언자들과 성인들이요,
이 매일 미사의 길을 통해
이 거룩한 성전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주님의 길을 닦았던 요한 세례자,
바로 주님이 보내신 엘리야라는 말씀입니다.

잠시 불신으로 벙어리가 되었던 즈카르야는
엘리사벳의 말을 듣자 즉시 글 쓰는 판을 청합니다.
 
그 글 판 위에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쓰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침묵의 벙어리로 있는 동안
즈카르야는 하느님의 섭리를 깊이 묵상했을 것이며,
마침내 엘리사벳의 말을 듣는 순간
터져 나온 그의 고백과도 같은 하느님의 선물 ‘요한’이란 이름입니다.

매일 침묵의 밤잠에서 깨어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성무일도와 미사를 통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영적 이름,
하느님의 선물 ‘요한’ 임을 확인하는 은총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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