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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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순 | 작성일2009-01-02 | 조회수58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 공현 전 금요일)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바리사이들이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세례 요한에게 보내어 요한의 신원을 확인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에게 세례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며 아주 명쾌하게 말합니다.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하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엘리야'냐고 묻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유다인들은 엘리야가 다시 올 것을 믿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엘리야도 아니면 최소한 예언자로 알고 다시 신원을 확인하지만 '예언자도 아니다' 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그들이 더 당황한 것 같습니다. 세례 요한 조차도 하물며 예언자가 아니라고 하는데 요즘 우리 사회는 예언자가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예언자는 넘치고 넘쳐나므로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를 실천하는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마태 9,37) 하신 말씀처럼 땀 흘려 일하고자 하는 일꾼들은 부족하고 예언자들만 많이 있으니 아직도 주님의 길을 곧게 내지 못 할 뿐 아니라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노동 생산력을 중히 여기는 사회가 되고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자세로 기축년 금년은 소처럼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그런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이 한마디 말씀으로 세례 요한의 인품을 알아볼 수 있으며 우리도 늘 이런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세례를 주는 것은 뒤에 오실 그분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서 세례의 의미를 민중들에게 알리려는 뜻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 이 말씀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과 물로 세례를 준다.'는 언급이 생략된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태 3,11)하였으므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실 세례를 이미 알고 계신 분입니다. 물로 세례를 준 것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그들에게 다음에 오실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알아듣지 못하므로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제물을 바쳐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마음과 몸을 정결하게 하는 세례의식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요르단 강변에서 세례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므로 죄 사함을 빙자하여 예물을 받고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많은 미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싶어도 예물을 바칠 수 없어서 죄 사함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민중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물의 세례'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한 3, 5)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없었으면 죄 사함을 받는 방법부터 먼저 깨우쳐 줘야 하므로 예수님은 세례 운동을 전개하느라 복음을 선포하실 여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이렇게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대부분 '오십보백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생각하기에는 종잇장 한장 차이에 불과한 이런 차이를 가지고 서로 잘 났다고 다퉈봐야 이 땅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으므로 내가 제일 못난이고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는 마음으로 기축년 한해를 보낼 수 있도록 아빠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대자대비 하신 아빠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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