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진짜 어리석은 사람 - 주상배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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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9-01-02 | 조회수759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진짜 어리석은 사람
여성구역장의 청으로 비신자인 그의 장부 N 씨를 여러 번 만났는데 그는 S대 출신 의학박사로서 지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대화가 끈적끈적하고 잘 되지 않았다. 그가 하느님을 받아 드리기에는 아직도 너무 건강하고 가진 것도 많고 아는 게 남보다 더 많다는 자부심등이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것 같았다. 하느님 얘기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기에 나도 기분이 안나 "에이 이제 오늘로 그만 이다" 라고 생각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열심한부인의 기대와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부터 들려오는 "안드레아야, 너는 내 사제가 아니냐?" 라는 소리에 모진 마음이 무너져 내리곤 했다. 별 성과 없이 씁쓸히 돌아올 때라도 짧게나마 늘 그를 위해 기도드렸다. " 부족한 사제지만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이 그에게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나와 그의 마음이 더 부드러워지고 그가 당신의 품 안으로 꼭 돌아오게 해 주십쇼" 라고 말이다.
얼마 후 인사이동이 되어 옮기는 바람에 그와의 만남은 끝났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그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내던 어느 날 그의 부인으로부터 참으로 오래간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즉슨, 남편이 그동안 몹쓸 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악화되어 지금은 위급한 상황인데 영세받기를 애절히 원하면서 꼭 나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아프다는 소리에 놀랐고 영세 받겠다는 소리에 또 한 번 놀랐다 아니 하느님을 그렇게도 고집스럽게 거부하던 분이 그리고 그렇게 건강하고,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의학박사님이 중병에 걸려 병약한 나를 다 찾다니…
부리나케 달려갔다. 나를 반가이 맞이하는 그는 이미 예전에 본 그이가 아니었다. 자신감 넘치고 활기찬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짙은 병색에 기가 완전히 꺾여 있었다. 위로의 말을 끝내고 나는 전에 들려준 교리를 상기시켜주면서 4대 교리를 설명하고 믿고 받아드린다는 뜻에 토마스라는 이름으로 그의 이마에 세례의 물을 부었다.
축하의 말이 오가고 분위기가 평온하다 싶을 때 자신의 병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던 남편에게 부인이 안타까움을 넘어 다소 원망스런 투로 말을 꺼냈다.
"여보, 당신 기억나요?
몇 년 전에 당신 선배 되시는 의과 대학 병원장 Y 박사가 몹쓸 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다녀와서 내게 하신 말씀인데… 왜 당신이 그러지 않으셨수.
아니 의학박사쯤 돼 가지고 자기 몸이 그렇게 되도록 여태껏 모르고 지냈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담… 아무리 생각해도 참 어리석은 사람이야 라면서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안타까워 하셨던 것 말이요.
그때 하셨던 말씀들 기억나시죠?"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던 당신이 똑같은 병에 걸려 이렇게까지 되셨으니 그런 당신을 보고는 그래, 뭐라고 그래야 되겠소?“ 움찔했던 남편 N 박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담담히 이렇게 말하였다
" 그러고 보니 나도 별수 없이 어리석은 놈이구려. 여보.
당신에겐 참 미안하오, 그런데 말이요, 내 이제 알고 보니 나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디다. 그래요? 그게 도대체 누군데요? 왕방울 같은 부인의 눈이 더욱 커지고 둥그레졌다.“
" 바로 예수라는 분이오.
뭐요? 아니 이이가? 예수님이 도대체 어디가 어때서… 그분은 거룩하신 하느님이신데… 그게 말이나 된답디까? 그러니까 그렇단 말이요. 나같이 죄 많고 어리석은 사람을 영원히 살린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죄도 없는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다니 그렇지 않소? 그래서 지금 나는 한결 위로가 되고, 감사하고 있소"
목이 메고 소리가 떨렸다. 잠시 고요가 흘렀다. 나는 침묵을 깨고
" 성서는 하느님이 행복, 지혜, 영원한 생명이시기에 그분을 알아 섬기는 이는 모든 것을 소유한자이며 그렇지 않은 이는 모든 것을 잃은 자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믿는다는 이들이 어리석고 가난하고 불행하게 여겨져도 그들이 행복해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을 알고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사님은 하느님을 깨닫고 세례성사를 통해 그분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박사님은 이제 더 이상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 모든 것을 소유한 현명하고도 행복한 분이시랍니다. 이제 기도 안에서 그분만이 주시는 짜릿한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새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있는 그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반짝였다. 그리고 그의 아내도 그랬다. 병실을 나서는 나도…
" 교우 여러분! 즐거운 한 주간 되세요. 사랑해요." ^^*
(주상배 안드레아 광장동 주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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