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5 주님 공현 후 월요일
1요한3,22-4,6 마태4,12-17. 23-25
"생명의 빛"
어제 새삼스럽게 깨달은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왜 미사에 오는가?’ 자문하면서,
순간 떠오른 대답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라는
너무 자명하나 잘 잊고 지내는 사실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야 살기 때문에’
미사도 하고 기도도 한다는
너무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사실에 때한 깨달음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미사 중 성찬전례 시
‘주 예수 그리스도님’ 하며 경문을 읽는 순간
제대 위의 주님의 현존을 체험한 사실입니다.
너무 생생하여 잊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 없이 무슨 재미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주님이 없다면
살 맛 안 나는 참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일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은 분리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성경도 온통 하느님과 인간 간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 없는 인간은
답은 없고 물음만 있어 끝없이 방황할 수뿐이 없습니다.
“당신의 종위에 당신의 얼굴을 빛내어 주시고,
자비로우심으로 나를 살려 주소서.”
한계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시편저자의 하느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입니다.
아침 성무일도 독서 시 이사야의 고백도 공감이 갔습니다.
퍽 고무적이라 위로가 됐습니다.
“주님을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기쁘다.
나의 하느님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뛴다.
그는 구원의 빛나는 옷을 나에게 입혀주시고
정의가 펄럭이는 겉옷을 둘러 주셨다.”
주님을 만남으로 마음 기쁘고 가슴 설레는 이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꼭 반복되는 역사 같습니다.
지금의 시국만 봐도 꼭 30년 전으로 회귀한 듯합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의 인간현실이나
오늘 날의 인간현실이 흡사해 보입니다.
“이민족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땅 갈릴래아,
주님이 없는 사람들의 비참한 처지를 상징하는 지명입니다.
오늘 날 역시
어둠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내적현실의 삶을 사는 이들 얼마나 많겠는지요.
밤의 어둠을 밝히며 떠오르는 동녘의 태양처럼,
죽음의 어둠을 밝히는 생명의 빛이신 주님이십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와 더불어 동터오는 마음의 태양이신 주님이십니다.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신
똑같은 주님이 오늘 미사를 통해
우리의 어둠을 거둬주시고 영육을 치유해주십니다.
1독서의 요한은 회개의 구체적 실천으로 계명을 지킬 것을 당부하십니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할 때
비로소 하느님과 일치의 삶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은 우리 안에 머무름으로
하느님과 하나 된, 생명의 빛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빛나는 옷을 입혀주시고
생명의 빛으로 충만케 하시어
오늘 하루도 하늘나라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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