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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 - 1.1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1 조회수521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11 주일 주님 세례 축일                                    
이사42,1-4.6-7 사도10,34-38 마르1,7-11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
 


간혹 영세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분들에게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영세 받으니 영세 받기 전과 차이가 있습니까?”

대부분 이구동성의 대답입니다.

“그러면요. 우선 마음이 평화롭습니다.
  기도드릴 하느님이 있어서 좋습니다.”

우선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꼽습니다.
 
사실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요 은총입니다.
 
영적으로 새로 탄생했음을 의미합니다.

과연 세례 받은 이후 영적성장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한 번으로 끝난 세례성사지만
끊임없이 세례의 은총을 상기하며 영적 삶을 점검해 봐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주님의 세례 축일을 통해
하느님 자녀로서의 우리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해보도록 하십시다.


첫째, 세례를 통해 하느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말 그대로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신분으로 업그레이드되었음을 뜻합니다.
 
막연히 ‘인간답게’의 삶에서
‘하느님의 자녀답게’의 삶으로 전환됐음을 의미합니다.
 
추상적인 하느님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배우고 느끼고 깨달아야 할
나의 하느님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유일한 분이 생겼음을 뜻합니다.
 
마침내 내 생명의 주님을 만났음을 뜻합니다.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 삶, 진정한 삶이 아니라 참 허무한 삶입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참 나도 알 수 없습니다.
 
평생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또 참 나를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허망하겠는지요.
 
과연 하느님을 맛보고 느끼며 살고 있습니까?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 때
참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하느님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큰 특권인지요.
 
1독서의 주님의 말씀,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모두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역시,
주님의 종이요,
주님께서 붙들어 주는 이,
주님께서 선택한 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이들입니다.
 
그대로 믿으십시오.
 
이런 건전한 자부심이 바로 내적 힘입니다.
알게 모르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주시고
우리를 선택해주시고 붙들어 주셨기에
공정을 펼치며 여기까지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평생 주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둘째, 세례를 통해 우리 위에 하늘 문이 열렸음을 뜻합니다.

비로소 마음의 눈이 열려 하느님의 신비를 보고
마음의 귀가 열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음을 뜻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 대화의 기도를 할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분명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침묵 중에 기도했을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신 주님께 활짝 열린 하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다.”

마음의 눈이 열려 갈라진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둘기 모양의 성령을
한 눈에 보신 주님이시며,
마음의 귀가 열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예수님이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바로 이게 존엄한 품위의 우리 모습입니다.
 
세례 받은 모든 이들의 신원입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도 분명 세례를 받을 때
우리 위에 성령이 내려왔을 것이며,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녀, 내 마음에 드는 자녀’라는 말도
들려왔을 것입니다.
 
기도할 때 열리는 하늘 문입니다.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신비를 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풍부한 영적 삶을 삽니다.
 
보이는 우상이 전부가 되어가는 천박한 세태요,
육적 욕망의 삶이 영적 삶을 압도하는 영적 빈곤의 오늘 날 세상입니다.
 
세례 받을 때처럼,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내려와야 영적 충만의 삶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므로
성령 충만한 삶에
늘 마음의 눈이 열려
하느님의 신비를 보고
마음의 귀가 열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바랍니다.


셋째, 세례를 통해 영적으로 거듭 난 삶입니다.
 
육적 탄생에 이은 영적 탄생이요 영적성장의 삶입니다.
 
바로 그 이상적 모델이 오늘 이사야서에 나오는 주님의 종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이자 진정 하느님을 찾는,
영적성숙의 정상에 이른 관상가들의 모습입니다.
 
늘 읽어도 신선한 자극이 되는,
우리의 내적 삶을 거울 같이 비춰주는 말씀입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마치 세례 받으신 후 공생애가 시작되자마자
두루 다니시며 소리 없이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이들을 모두 고쳐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갈수록 목소리들이 커지고 행동도 거칠어지는 세상입니다.
목소리들이 크면 주변이 시끄럽고 평화도 없습니다.
 
감사하고 미소 짓고 침묵하면 행복은 저절로 옵니다.
 
부러진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섬세한 배려와 자비심, 바로 관상가의 진면목입니다.
 
결코 좌절하지 않고 백절불굴의 믿음으로
끝까지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받은바 사명에 충실합니다.
 
이렇게 살면 누구나 구원입니다.
영성생활도 끊임없는 수련의 노력입니다.
 
의식적으로 깨어
주님의 종 같은 관상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이 모든 노력이 가능합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 문이 활짝 열려 비로소 영적 삶이 가능해진 우리들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영적 삶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까?
 
세례 받았다 하여
영적 삶의 완성이 아니라
영적 삶이 시작되었음을 뜻할 뿐입니다.
 
평생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공부를 통해,
성사생활과 수행생활을 통해 비로소 세례의 완성입니다.
 
오늘 이 거룩한 주님 세례 축일 미사를 통해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우리 위에 내려옵니다.
 
우리 모두를 향해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
(마르1,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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