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6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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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순 | 작성일2009-01-14 | 조회수53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그 무렵 29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은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치유해 주신 것은 영육을 치유해 주신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회당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통하여 마귀를 내 쫒는 첫 표징을 보여 주셨으며 오늘은 두 번째 표징으로 열병으로 고생하는 시몬의 장모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듯이 저희들도 예수님으로 부터 치유를 받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예수님처럼 영육이 완전한 사람이라면 교회에 나올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가릴 것 없이 불완전하며 완전한 분은 오직 한 분 예수님뿐이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완전하신 하느님의 아들로 믿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열병으로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에게는 손으로 잡아 일으키시어 치유하셨고 어제 회당에서는 말씀으로 마귀를 쫒아내셨으며 오늘도 회당에서 복음 선포로 즉, 말씀으로 마귀를 쫒아내셨습니다. 이렇듯 육신의 병은 당신의 따스한 손길로 치유해 주셨으며 마귀에 들린 사람들은 말씀으로 치유해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영육에 따라 치유 방법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 예수님이 실재해 계신다면 당신의 따스한 손길로 우리 육신의 모든 병도 다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수님은 아직 우리 곁에 재림하지 않으셨기에 우리 육신의 병은 예수님께 직접 치유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귀에 들린 병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는 말씀으로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스스로 마귀 들렸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말씀으로 치유할 수 있지만 본인이 마귀 들린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치유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마귀 들린 사람들입니다. 마귀 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제일 지독한 마귀가 들어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말씀으로 마귀를 내 쫒으셨으므로 말씀을 100%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마귀 들린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른 새벽에 혼자서 외딴 곳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위선자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올바른 기도'(마태 6, 6-8)에 대하여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차마 이곳에 옮기지 못하겠습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보편지향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보편지향기도의 내용을 기억하는 교우들은 과연 몇 사람이나 되고, 교회와 우리들은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런 빈말은 되풀이 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광야에서 나오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利他行을 실천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는 신앙생활임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능력을 민중들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서 땀 흘리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표징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관점에서 벗어나서 자비를 실천하는 모습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 생전에 다시 오셔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여 주실 것도 아니고 그 때문에 가톨릭에 입교한 것도 아니므로 표징의 사실여부에 연연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스스로도 초자연적인 표징은 보여 줄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마르 8, 12)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마귀를 내 쫒고 병자들을 치유한 것을 예수님께서 초자연적 능력을 행사하는 표징으로 이해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스스로가 부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를 물론 반어법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성경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도 이제 우리는 성경을 보다 유연하게 해석하여 예수님의 정신을 계승해 나가야 함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 하신 아빠 하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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