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 - 윤경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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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경재 | 작성일2009-01-14 | 조회수574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 - 윤경재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마르 1,29-39)
예비자 교리를 받는 분이나 일반 교우들이 가끔 질문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비자 교리 교육기간이 너무 길다는 하소연입니다. 요즘은 나아졌지만 한때는 일 년씩 걸리는 적도 있었습니다. 요즘에도 육 개월이나 사 개월 정도 소요됩니다. 믿는다는 마음만 있으면 세례를 주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질문입니다. 꼭 일정기간 교리교육에 참석하고 미사참례를 해야만 되느냐?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투입니다. 신앙은 물론 주님을 알고 받아들이는 믿음이 첫째입니다. 그러나 또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옛 습관을 끊어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길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기 전에 악마를 끊어버린다는 맹세를 하는데 악마는 어떤 세력뿐만 아니라 옛 습관의 유혹을 뜻하기도 합니다. 교리교육 기간은 어쩌면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데 필요한 최소 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약한 인간이기에 습관의 노예가 되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어제와 오늘 복음내용(마르 1,21-39)은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서 보내신 안식일의 하루 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안식은커녕 정말 한시도 쉴 틈 없이 바쁜 일정입니다. 먼저 회당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악령 들린 사람을 고쳐주어 놀라게 만드셨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베드로의 집에서 열병 들린 그의 장모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 집에서는 제자들과 식사하며 가르치셨습니다. 멀리 걷지 못하고 치료하지 못한다는 안식일 규정이 끝나는 저녁이 되자 많은 병자와 마귀 들린 이가 집문 앞에 모여들었고 그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른 새벽 캄캄할 때 홀로 기도하시러 나가셨습니다. 잠자던 사람들이 아침이 되자 놀라서 예수님을 찾아 나섭니다. 마르코 저자는 예수님의 일상생활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하였습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으시고 사람들과 아빠 하느님에게 충실하신 모습을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어느 신부님께서는 이 대목을 묵상하며 예수님처럼 살다가는 피로에 지쳐 오래 못살 것이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생활습관을 들이면 이렇게 못할 것도 없다고 봅니다. 신앙은 생활이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신앙이 어려운 것입니다. 매일 새벽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하면서도 생활전선에서 열심히 일하며 또 시간을 쪼개어 봉사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분일수록 건강하고 활기차 보입니다. 정말 제가 존경하는 분들이죠. 베드로가 어떤 성격이었는지 오늘 복음을 통해서 엿볼 수 있습니다. 장모님을 집에 모시는 것으로 보아 정과 의리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을 집에 모실 수 있는 용기와 어느 정도 능력과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작년 성지 순례 때 찾아본 베드로의 집터는 상당히 넓었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어부라도 가난한 어부가 아니라 고기잡이배를 여러 척 소유했거나 마을 어부조합의 조합장쯤 되는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리더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아침에 일어나 예수님께서 떠나셨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찾아 나섭니다. 그는 이렇게 훌륭하신 분을 자기 집에 모셨으며 또 그런 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던 것입니다. 자기 말 한마디면 예수님을 다시 집으로 모셔오고 온 마을에 자신의 체면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만이 그런 분을 모실 능력이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지없이 거절하십니다. 베드로의 그런 심중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얼마나 자주 신앙을 무슨 훈장이나 되는 양 뻐기고 다니지는 않았는지요? 혹시 베드로와 같은 심정은 아니었는지요? 봉사도, 어느 신부님을 잘 알고 모시는 것도 혹시 제 자랑과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는지요? 주님을 자기 안에 모시는 일마저 자랑으로 삼고자 하는 신앙은 자칫 유혹에 걸려 넘어지기 쉽습니다. 복음서에서 베드로는 여러 번 이런 유혹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사탄이라고 야단까지 맞았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 하느님의 일을 하더라도 철저히 이웃과 주님만을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You Raise Me Up / West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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