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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슨 말이라도 들어주실 것 같은 분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5 조회수511 추천수4 반대(0) 신고
 
 

무슨 말이라도 들어주실 것 같은 분 - 윤경재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마르 1,40-45)

 

  나병 환자가 겪는 고통은 비단 육체적 아픔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다른 데도 있습니다. 누구도 그들과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눈만 마주치고 말만 섞어도 병이 옮기는 것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현대판 나병이라 일컫는 에이즈 환자가 겪는 고통도 이와 같다고 합니다. 체액 교류만 조심하면 전염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그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려합니다.

  한때 술잔돌리기를 적극 만류한 적이 있습니다. B형 간염을 예방하자는 차원이었습니다. 심지어 찌개 같은 국물음식도 따로 먹어야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는 전염성 위험이 거의 없는데도 몇몇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어 서로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손을 깨끗이 씻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해야 하는 점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잉 반응은 환자 당사자에게 씻지 못할 수치심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소통을 방해합니다. 그 소동은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습니다.

  소통부재가 원인이 되어 생겨나는 일로 자살사건이 있습니다. 최근에 무슨 유행처럼 크게 늘고 있습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자신의 힘든 생활이나 타인의 오해로 괴로워하다가 자살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힘들면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니?”라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자기가 다 들어 줄 수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데 실은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중심적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왜 말해주지 않았을까요. 들어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이 괴로워서 또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자신을 붙잡아 달라는 신호를 미리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주위에서 그 신호를 무시하고 ‘어떻게야 하겠어?’라고 자신 위주로 판단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니 정말 죽음 이외에는 다른 해결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살을 실행합니다. 기껏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가까운 친지마저도 몰라준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읽으라고 권하는 위인전에 조지 워싱턴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직한 정치인으로 성공한 그의 일화 중에 ‘어릴 적 벚나무 사건’이 유명합니다. 아버지가 아끼던 나무를 베어내고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한 워싱턴을 칭찬하는 내용이지만, 실제로 더 훌륭한 분은 그의 아버지입니다. 애지중지하는 벚나무가 잘려나간 것을 발견하고 펄펄 뛰며 화를 내시는 아버지를 보고도 어린 워싱턴이 자기가 그랬노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귀담아 들어주셨던 아버지의 태도 덕분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라면 일단 말을 들어주시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의 잠재의식에는 아버지를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한자로 聖人의 성스러울 聖자는 귀와 입을 왕처럼 잘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들을 귀 耳가 먼저 나옵니다. 남들의 말과 행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잘 들어주시는 분이 성인입니다. 말로 가르침은 그 다음입니다. 천지의 소리에도 놓치지 않고 귀를 기울이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무슨 말을 하여도 다 들어주실 분이라는 믿음이 가는 분이셨습니다. 나중 일이야 어찌되던 어린 워싱턴이 아버지를 무엇이든 들어주시는 분으로 여겼듯이 나병 환자도 결과를 의심하지 않고 예수님께 다가와 말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솔직히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말을 귀담아 들어줄 자세가 준비된 사람에게만 말하는 법입니다. 과연 우리가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자세가 되어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도 아무 편견 없이 받아들이며 지혜와 사랑으로 그를 어루만져 주어야 하겠습니다. 문제 해결은 그 다음입니다. 지레 겁먹고 막아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하겠습니다. 핵심을 제대로 찔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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