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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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9-01-16 | 조회수977 | 추천수16 | 반대(0) 신고 |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 마르코 2,1-12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약자를 배려하는 공동체>
오랜 세월 치매로 고생하시는 아버님을 지극정성으로 봉양하기로 소문난 한 효자가 한적한 바닷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 온 종일 맥없이 자리에 누워만 계시는 아버님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이 없겠는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최근 한 가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즉각 실행에 옮겼습니다.
아버님은 젊은 시절 어부셨기에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태풍이 불어 고깃배가 뜨지 못하는 날조차 방파제로 나가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계셨던 모습도 기억났습니다.
아들은 우선 아버지와 바다를 가로막고 있는 높은 담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담이 있던 자리에 예쁜 꽃들을 줄줄이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님은 담 허무는 공사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셨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힘겹게 마루로 나오셨습니다. 고개를 바다로 향했습니다. 굳게 잠겨 침울했던 그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가던 마을 사람들도 마루로 나와 앉은 아버님을 향해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고, 아버님께서는 예전보다 훨씬 행복해보였습니다.
노부모님을 모시고 계시는 자녀분들 계실 텐데, 특히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님들, 병고에 시달리고 계신 부모님들 모시느라 정말 고생들이 많으시겠지요.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노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은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신앙인에 앞서 인간으로서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우리 부모님들, 그간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과 기쁨을 안겨주셨습니까? 그분들이 우리에게 주셨던 그 행복을 이제는 우리가 돌려드려야 할 때입니다.
몰론 점점 연로해져만 가시는 부모님들 바라보는 시선이 꼭 곱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한때 그렇게 위풍당당하셨던 분, 태산 같은 분이셨는데, 이제 완전히 노쇠해지시고, 저리 쫀쫀해지시고, 저리 구차스러워지시고, 마음으로부터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은근히 무시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자리 잡습니다.
그러나 꼭 기억하십시오. 노화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약화는 어쩔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입니다. 어쩔 수 없는 우리 인간의 본 모습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습니다. 육체는 시들고 영혼도 시듭니다. 그저 부족하고 안쓰러운 한 존재, 측은한 한 인간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그래서 이제 건강할뿐더러, 인생의 황금기를 구사하고 있는 자녀들께서는 부모님과의 관계 설정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위치가 바뀐 것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들, 이제는 우리가 보호해드리고, 동반해드리고, 기도해드리고, 감싸 안아드려야 할 연약하고 측은한 존재인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 안에서 더 많은 사랑과 위로가 필요한 약자인 것입니다.
노화와 더불어 즉시 다가오는 감정이 서운함입니다. 허전함입니다. 무대 뒤로 물러나야 하는데서 오는 쓸쓸함입니다. 이런 부모님들에게 자녀들은 위로자요, 치유자, 동반자요 격려자로 존재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 가족들의 지극정성을 눈여겨보십니다. 그들이 오늘 보여준 행동은 상식을 크게 벗어난 행동이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 행동이었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다급하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켰어야지요. 아무리 절박하다 하더라도 이게 뭡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갑자기 지붕이 열리고, 열린 지붕 사이로 끈에 매달린 중풍병자가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족들의 병자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간병해왔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뎌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족들의 그 적극성, 능동성 앞에 탄복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정이 가장 약한 사람을 가장 많이 배려하길 바랍니다. 구성원 가운데 가장 약자를 공동체의 중심이 놓길 바랍니다. 끝까지 약한 사람을 포기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55번 / 착하신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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