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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6 조회수1,087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him,
“Child, your sins are forgiven.”
(Mk.2.5)
 
 
제1독서 히브리 4,1-5.11
복음 마르 2,1-12
 
 
미국 남북전쟁 당시, 한 백인 병사(남군)가 전투 중에 중상을 입고 곧바로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수술 도중 사망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흑인 피는 절대로 수혈하기 싫다며 완강히 고집 부리다가 치료시간을 놓쳤기 때문이지요.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독일 병사가 부상을 입고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야전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적군의 피는 수혈할 수 없다면서 거부했고 끝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백인 병사 그리고 독일 병사의 행동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흑인의 피라서 받을 수 없고, 적군의 피라는 이유로 수혈할 수 없다는 행동이 과연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요?

이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얻고, 원하지 않는 것은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손해를 가져올 수도 있고, 때로는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마치 자신의 생각이 하느님의 뜻인 양 착각하면서 더불어서 살아가는 이 세상의 법칙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사실 더불어 사는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이웃을 만들어 주신 것이지요. 만약 혼자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굳이 이웃을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함께 어울려 살라고, 서로 사랑하며 살라면서 이웃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웃이 함께 살 수 없는 적이 되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서도 더불어 사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중풍 병자는 꼼짝도 못하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네 사람이 들것에 중풍병자를 들고 오지요. 그런데 군중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서 그 병자를 내려 보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중풍 병자가 용서받은 것은 중풍 병자가 특별히 무엇인가를 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중풍 병자가 자신의 몸을 질질 끌고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도 아니었고, 예수님께 특별한 신앙고백을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치유하셨다고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잘했다고 구원받는 것만은 아닌 것입니다. 바로 내가 만나는 이웃을 통해서 내가 용서받으며, 내가 구원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원만한 가정은 상호간의 희생 없이는 절대 영위(營爲)되지 못한다. 이 희생은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을 위대하게 하며 아름답게 한다.(앙드레 지드)




좋아하며 사랑하며(‘좋은생각’ 중에서)

집에 열 살짜리 손녀딸이 있다. 외동딸이다. 태어날 적엔 한심할 정도로 못생겼다. 아이 아빠가 할머니를 닮아서 그러니 이다음에 손녀딸 개발비를 대 주어야 한다고 항의성 청구를 했다. 곱슬머리에 볼우물이 틀림없는 할머니 2세라는 거다. 여기까지는 항의를 받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코와 눈에 있다. 손녀딸이 할머니 코를 닮아 오뚝하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눈은 쌍꺼풀이 없고 쪽 째졌다.

“얘는 크면 코가 살아날 테니 걱정 마라.”

나의 예언은 적중했다. 손녀딸은 일곱 살이 넘으면서 콧날이 오똑해졌다. 그뿐 아니라 쌍꺼풀이 없고 쪽 째진 작은 눈이 요즘 매력 포인트란다. 사람들은 김연아를 닮았다고 한다. 그 매력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말이다.

나는 손녀딸에게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욕심을 부릴 만도 했다. 두 돌이 되면서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완벽하게 불렀기 때문이다. 아이가 천재인 줄 알고 흥분한 나는 하루에 한 시간씩 아이를 앉혀 놓고 닦달했다. 삼 년이 지나자 아이는 피아노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피아노 앞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아이와 놀아 주는 일도 하지 않았다. 손녀딸은 할머니와 노는 것을 무척 좋아했지만 피아노를 치지 않은 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 나는 재능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말을 재미있게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중 한 가지만 있어도 매혹당한다. 나는 손녀딸을 내 스타일의 아이로 만들려고 작정했던 모앙이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을 돌아보니 내 스타일이 아닌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오십년 이상 우정을 쌓아 온 친구들이며 지인들, 가족까지 신통하게도 내 스타일인 사람은 거의 없다. 재능과 매력이 있으면 성격이 좋지 않아 죽도록 미운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기는 더 어렵다. 나는 풀이 죽었고, 세상은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스타일이 아니어도 사람들을 좋아하며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랑은 매혹당하는 것이 아니고 선택이고 노력이어야 한다. 재미없는 친구들을 사랑하고 개성이 강한 가족을 사랑하며 특히 내 손녀딸을 사랑한다. 그들을 좋아하며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특별한 능력이며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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