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의 울부짖음을 들으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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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웅열 | 작성일2009-01-16 | 조회수608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나의 울부짖음을 들으소서! (회심하는 인간)
한 인간이 비통한 슬픔에 잠겨 있거나, 혹독한 시련 중에 있거나,
아니면 죽음이 판을 치는 절망적 처지에 놓여 있을 때,
성경은 그 사람이 심연을 경험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한 인간의 심연 체험은 요나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큰 물고기에게 먹힌 요나가 그 물고기 뱃속에서 하느님께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
“물은 목까지 차올랐고 깊은 바다는 이 몸을 휩쌌습니다.”(요나 2,6)
요나가 바다 속 심연에서 하느님께 울부짖었더니 하느님께서 그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셨다는 얘기가 나온다.
요나가 경험하는 심연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자들이 갖게 되는 영적 죽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한 인간이 지은 죄가 크면 클수록 그의 심정은 더 처참하고 울음소리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지은 죄가 큰 만큼 죽음의 자리는 더 넓고, 죽음의 위협은 더 크기 마련이다.
죽음의 심연에서 울부짖는 시편 저자의 울부짖음은 절망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을 향한 울음, 희망의 울음이다.
깊은 수렁 속에서 울부짖는 울음소리는 그 나락이 깊은 만큼이나 한량없는 하느님 자비를 불러일으킨다.
심연에서 울부짖음은 인간 절망의 깊이만큼 하느님 자비의 깊음을 드러낸다.
시편 저자는, 울부짖음을 통하여 자기가 처해 있는 죽음의 자리가 생명의 자리로 변화되기를 바란다.
“자비를 청하는 나의 울부짖음을 귀 기울여 들으소서.”
이집트를 탈출한 야곱의 후손들이 홍해 바다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 설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그들이 하느님을 향해 울부짖자 하느님께서는 깊은 바다에 마른 길을 내시어 그들이 무사히 건너게 하시었다.(탈출 14,10-39)
죽음의 자리 홍해 바다를 생명의 자리로 바꿔 놓으신 것이다.
이러한 구원 체험이 있었기에 시편 저자도 울부짖으며 죽음의 자리가 생명의 자리로 바뀌게 해 주십사고 청하는 것이다.
인간의 울부짖음은 하느님의 마음을 더 없이 약하게 만든다. 송 봉 모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나의 바람이 크면 클수록 나의 울부짖음도 크다. 나의 바람이 크면 클수록 나의 노력은 그만큼 더욱 더 커져야 한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삶의 질을 높이려면 그만큼 담배도 끊어야 하고, 술도 줄여야 하는 의지를 더욱 굳게 하여야 한다.
내가 나의 친구를 더욱 가까이 하려면 그 만큼 더욱 더 깊은 사랑을 주어야 한다.
사랑은 오로지 주기만 하는 것이지 그 어떤 것을 받으려는 조그마한 욕심이 들어 있으면 그것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다.
이 말을 기억하자! “시편 저자의 울부짖음은 절망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을 향한 울음, 희망의 울음이다.”
우리가 약해서가 아니라 나의 삶에서 추구하는 삶의 질을 높이려는 인간의 노력은 생명의 길로 향하는 것이다.
“시편 저자는, 울부짖음을 통하여 자기가 처해 있는 죽음의 자리가 생명의 자리로 변화되기를 바란다.”
이 ‘죽음의 자리’는 바로 내가 처해 있는 이 안락함과 편안함을 누리는, 그래서 하느님을 외면하고 멀어지는 자리일 수도 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오늘 아침에는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의 아내와 자식들과 그들이 이룬 가정에 주님의 축복을 내려주시고 주님의 뜻에 맞는 생활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그리고 이어서 나의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대자와 묵상 방의 형제, 자매님들에게도 축복을 내려주소서!
또한 병석에 누어서 주님의 따뜻한 치유만을 기다리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강복하시어 주님의 위로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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