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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6 조회수701 추천수2 반대(0) 신고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마르코 4:22)
 
생각은 행동을 통해서만 빛을 보게 된다. 생각은 행동의 씨앗인 셈이다.
씨앗이 싹이 트면 행동이 된다.
프랑스에서 약 15년 간을 살았던 일본의 선사(禪師)
다이센 데시마루(弟子丸 泰仙, Taisen Deshimaru , 1914-1982)는
서구 문화는 쇠퇴하고 타락했다고 말했다.
행동은 하지 않고 너무 생각과 상상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것처럼
“물에 빠져 익사하듯 쓰잘 데 없는 생각에 빠져 죽어 버린 것”이다.
물론 활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못해 행동으로 옮기고 있을 뿐이다.
생각을 깊이 하지 않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도 못하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본질을 망각할 때가 많다.
철학자들은 생각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몰두할 수 있지만
그들은 행동가는 되지 못하고 교수밖에 되지 못한다.
그러나 행동가들은 행동을 한다. 선사는 말하였다.
“우리 모두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모른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우리들이 생각하는 죄라고 생각하시지 않고
불완전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하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사실 중풍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생긴 것이지
하느님의 벌을 받아 생긴 것이 아니다.
곧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자기 몸관리를 하지 않은 것이므로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비록 예수님께서 병을 낫게 해주셨지만 깨닫지 못하면
다시 재발할 수밖에 없는 병이었다.
 
파리 남쪽 르와르 계곡의 겐드로니에르에 조동종 선원을 세운
데시마루 다이센 선사는 1967년 7월 단신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전법을 하였다.
조동종에서 전법자금을 주어 해외에 파견한 사절단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뜻에 따라
무일푼으로 파리에 도착한 그는 조동종의 전통을 따라 묵묵히 좌선하여 영묘한 마음의 작용을 일으킨다는 묵조선을 가르쳤다.
묵조선은 갑자기 대오(大悟)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내재하는 본래의 청정한 자성(自性)에
절대적으로 의뢰하는 선(禪)으로서 화두(話頭)를 참구하는 간화선과 대비되는 참선법이다.

데시마루가 프랑스로 온 것은 스승 사와끼의 유언을 받든 것이다.
1965년 사와끼는 입적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인도에서 불교가 죽자 보리달마 대사가 불교를 가지고 동쪽으로 왔다.
그러나 이제 일본 불교는 죽었다.
너는 이 진법을 가지고 서쪽으로 가서 그곳에서 법이 융성하게 하라.”

스승이 입적한 후 49일동안 좌선에 들었던 데시마루는
러시아 횡단열차를 타고 넓은 러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프랑스로 왔다.
그가 파리에 도착한 1967년은 트룽파 린포체가 스코틀랜드에
삼예링 센터를 설립한 해이기도 하다.
그의 나이 53세였고, 불어는 전혀 할 줄 몰랐으며 무일푼이었다.
그런 데시마루가 가진 것은 오직 3가지였으니, 바로 가사 한 벌,
스승 사와끼 고도가 늘 지니고 다녔던 노트, 그리고 좌선용 방석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엔 꼭 이루고싶은 꿈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이 ‘진정한 선불교’라고 믿고 있던 그것을
유럽에 펼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신념과 열정으로 전법을 시작한 지 24년이 지난 1991년에는
프랑스에 90개 수행센터를 비롯하여
전세계에 200곳의 수행센터를 수립하게 된다.
1970년에는 유럽 선불교협회를 창립했다.

  1914년 사무라이 가정에 태어난 데시마루는
어린 시절 극심한 고독감을 경험했고,
인간이 다른 생명에게 가하는 잔혹행위를 절감했으며,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삶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요코하마 대학에 입학하여 20세기 후반에 촉망받는 학문이었던 경제학과 영어를 전공하는 동시에 힌두교, 그리스도교, 서양 철학을 두루 공부했지만, 결국 인간 딜레마를 해결하는데는 선불교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인연이 닿는 수행처를 찾던 중 조동종의 본산 총지사(소지지)를 찾게 되었다.
그곳에서 경책 스님으로 있던 사와끼 고도를 만났는데
어느 날 그의 노트를 보던 중에서 이런 구절을 만나게 되었다.

  홀로 걷는 사람은 홀로 앞으로 나아간다.
  누구나 홀로 가는 여행길.
  성자(聖者)는 우주와 하나임을 느끼기에,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네.

  나는 왜 좌선을 하는가?
  무소득!
  아무런 목적도 얻을 것도 없도다.

   바로 좌선의 목적이 ‘무소득‘이라고 명시한 이 말에 감동한 데시마루는 바로 제자 되기를 청하였고
의기투합한 이들은 매실주를 마시며 함께 대취한다.
이때 사와끼는 아직 남을 가르칠 자격이 없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동종 내의 형식주의를 심히 우려하고 있던 사와끼에게
역시 형식을 중히 여기지 않는 데시마루가 외적 자격이 없더라도
나의 철학에 맞는 스승이니 진정한 스승이라 생각하고
즉석에서 제자되기를 청했으니
정말 인연을 제대로 만났다고 할 수 있겠다.
젊은 시절 사와끼를 만난 이후 좌선에 대한 신념이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는 데시마루는 스승 사와끼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좌선 중 ‘깨달음을 얻어야겠다’고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데시마루는 말한다.
그리스도교의 기도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좌선에서는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견성이 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에 깨달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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