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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뱀과 비둘기가 되라고요?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0 조회수460 추천수5 반대(0) 신고
 

 

뱀과 비둘기가 되라고요? - 윤경재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10,16-20)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얼핏 들으면 모순되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뱀도 되고 비둘기도 될 수 있다는 말인지요. 무슨 말씀인지 어느 정도는 짐작이 되지만, 과연 내게도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그런 비법이 있다면 큰돈을 들여서라도 얼른 배우고 싶다는 분이 많겠습니다. 산상수훈에서 너무 엄청난 가르침을 들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이 드시나요? 다른 쪽 뺨을 내미는 것과 뱀도 되고 비둘기처럼 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쉬울까요? 눈을 빼어 던지고 손을 자르는 일보다야 쉽겠죠? 하지만, 이것조차 쉽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어느 때 뱀처럼 슬기롭다가 어느 때 비둘기처럼 순박해야 하는지요. 상황에 따라 뱀이 되었다가 비둘기로 변하라는 것인지요. 아니면 동시에 양 性을 함께 지니라는 것인지요. 아니면 그 중용을 찾으라는 말씀인지요. 

우리가 어떻게 뱀이 되고 비둘기가 되겠습니까?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뱀도 아니고 비둘기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냥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것만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신에 대한 앎을 자각하고 고백하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뱀이 되려고 발버둥치지도 비둘기가 되려고 헛된 힘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나는 반대로 처신해야지, 아냐! 그대로 따라야 더 효과적이야. 그리고 뒤를 보는 거야!”

우리는 뱀이 되고 비둘기가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기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위대한 스승들께서는 위와 같은 생각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되며 오히려 방해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상대도 금세 알아채기 때문에 똑같은 방법으로 대항하게 됩니다. 손바닥이 마주치는 효과만 납니다. 그러면 소리만 요란하게 됩니다.

내가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뱀이 되고 비둘기가 되려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대가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볼 줄 아는 자는 뱀도 되고 비둘기도 됩니다. 그러자면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거울처럼 그를 비춰주는 사람이기만 하면 됩니다. 

한번이라도 예수님의 사랑과 손길을 느껴 본 사람은 자신 안에 주님께서 오시는 고속도로를 뚫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도로에 떨어진 자갈돌만 쓸고 치우면 되는 것입니다. 공연히 예수님을 영접한답시고 부산떨다가는 자칫하다가 바리케이드만 설치하는 우를 범할지도 모릅니다.

지상의 순례자가 되어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주님께 받은 은총을 전하는 통로가 됩니다. 관건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령이 우리를 관통하시도록 마음을 여는 일 뿐입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몸소 탄식해 주십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동시에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역설적 진리를 예수께서는 뱀과 비둘기라는 모순어법으로 가리켜 보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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