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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92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0 조회수392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 14주간 금요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6-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7/5)의 주일 복음이어서 당일 묵상한 내용과 강론 말씀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여 오늘은 축일 묵상과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성서 비평적 관점에서 오늘 복음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을 묵상하려고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오늘 복음은 복음서를 이해하는 아주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임무를 부여하신 후에, 파견임무 수행 중에 제자들이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박해를 받을 것에 대비하여, 제자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대처방안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마르코와 루카복음서에서는 오늘 복음은 이런 의미가 아니라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에 환란이 닥칠 것이며 그 표징으로 오늘 복음과 같은 박해가 먼저 일어난다는 뜻으로 오늘 복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은 이처럼 공관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지만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와 이유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르코 및 루카 복음서의 기록과 마태오 복음서의 오늘 복음은 왜 이처럼 다르게 기록되었는지, 또 어느 복음서가 박해 사실에 대한 오늘 말씀을 더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구성하여 복음서를 기술하였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리 결론을 내리면 오늘 복음에 대해서는 마르코와 루카 복음서가 더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구성하여 기록한 것 같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전도 여행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 분의 전기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어록과 그 말을 하게 된 동기와 목적, 그리고 장소와 시기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므로 전기를 기록하는 일은 전문 작가의 입장에서는 창작물보다는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이런 기초자료가 전무하므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얘기와 말씀의 파편들을 수집하여 이를 전기문학으로 재구성한 것이 복음서입니다.

복음서는 수십 가지의 복음서가 있지만 우리 교회가 인정하는 복음서는 4복음서이고, 4복음서 중에서 처음 쓰여진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입니다. 마르코 복음서를 증보한 것이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르코복음서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파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성서학자들은 이를 Q자료로 부르고 있습니다.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 기자는 Q자료와 마르코 복음서를 비교하며 다른 전승들을 추가하여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를 기록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말씀의 파편(Q자료)에 오늘 복음이 있었을 것으로 가정한다면 이를 어떻게 적절하게 체계적으로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복음서 기자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함에 있어서 어제 복음과 오늘 복음사이에 큰 논리적 모순이 있음을 발견하여 오늘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서 비평적 관점에서 묵상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제 복음에서는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하시며 아무 것도 지니지 말고 빈손으로 떠나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일꾼으로 대접을 받기는커녕 박해를 받을 것을 예고하시고 계시므로 전혀 다른 말씀이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고,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을 무책임하게 사지에 몰아 넣을 분이 결코 아님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생각하면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 10, 5-6)하셨으나 오늘은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서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총독이 여러 사람이어서 복수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임금이 여러 사람이어서 복수로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승천 후에 제자들에 의해서 복음이 여러 민족에게로, 여러 나라로 전파되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여 모두가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왔기에 기뻐하시며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루카 10, 20)하셨습니다. 이런 사실에 비춰보면 예수님 생전에는 제자들이 박해를 받지 않지만 승천 후에는 박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으며 또한 이는 역사적 사실로 증명된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럼으로 오늘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당부한 말씀에, 승천 후에 일어날 박해에 관한 말씀의 파편을 배열시킨 것은 마르코와 루카 복음서에 비해 마태오 복음서에서의 오늘 복음의 배열은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늘 복음에서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승천 후에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다가 박해를 받을 것이지만 내가 곧 재림하므로 걱정하지 말고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복음 전도여행이 거의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하신 말씀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파견한 열두 제자들은 모두가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으므로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하신 이 말씀은 재림을 뜻하고 있으므로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하신 말씀으로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씀임을 알 수 있으며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서 박해를 받을 것이라 하셨으나 어느 누구도 박해를 받지 않고 무사히 귀환하였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틀린 결과를 초래하여 여러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박해에 관한 말씀의 파편이 존재하였고 이를 어떻게 적절하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며 복음서를 기술하였으나 마태오 복음서의 기자는 박해에 관한 말씀을 제자들을 파견하는 오늘 장면에 이를 기술한 것은 치밀하지 못한 구성이고, 마르코와 루카복음서처럼 최후의 심판 전에 환란이 닥칠 것이며 그때에 너희들이 나 때문에, 내 이름 때문에 박해를 받을 것이고, 이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알려준 말씀으로 기록한 것이 더 합리적인 구성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사실에 대한 내용을 묵상 글로 정리한 이유는, 복음서는 말씀의 파편들을 모아서 이를 사실감 있게 재구성한 것이므로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들에 대하여 우리가 중시해야 할 것은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이란 사실을 공유하기 위해서 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을 중시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말씀을 중시한다면 복음서에 기록된 이적은 더 이상 고집할 필요가 없으므로 불필요한 논쟁은 더 이상 확대 재생산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자신도 기복 신앙에서 벗어나 건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무오류는 이런 사건들이 진실하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 속에 담겨있는 가르침과 예수님의 말씀은 오류가 없는 진리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말씀에 대하여는 묵상도 하지 못한 체 묵상을 마감할 시간이 다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말씀을 요약하여 마침기도로 마무리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진리를 향해 가는 길은 박해의 길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진리를 향한 그 어떤 박해에도 굴하지 않아야 진리의 빛으로
우리 모두가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받을 수 있으므로
그 어떤 고난도 이를 기꺼이 감내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또한 우리의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이기에 진리가 아닌 그 어떤 일에도
생명을 경시하는 그런 잘못은 결코 범하지 않도록,
진리이시며 생명이신 성령님께서는
저희를 진리의 길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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