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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화를 빌어주십시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9 조회수615 추천수5 반대(0) 신고
 

 

평화를 빌어주십시오 - 윤경재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태10.7-15)

 

10장 12절에서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는 것과 14절에서 발의 먼지를 터는 동작은 얼핏 상반된 자세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껄끄러운 느낌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이율배반적이고 가식적인 태도가 아니냐고 질문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실생활에서 선교 대상에게 그런 행동을 보였다가는 해코지를 당하기 십상일 것입니다. 가뜩이나 못마땅하고 오해하고 있을 터인데 상대방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행동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럼에도 복음서에 적혀있다는 이유만으로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요청을 한다면 예수님의 뜻을 놓치는 일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문맥 말미에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라는 저주 글귀까지 왜 덧붙여 놓았는지 묵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자신의 공동체를 저주하고 박해하는 유다인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마태오 저자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먼저 언급하였습니다. 일종의 반어적 용법입니다. 상대가 거절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제자들이 할 일은 모두 마치라는 뜻입니다. 핑계거리를 만들지 말고 힘들어도 직접 가서 평화를 빌어주고 그러고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먼지를 터는 동작을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의외로 건질 것이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바로 참된 목자를 기다리고 있는 ‘길 잃은 양’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선교의 자세는 한마디로 ‘거저 주어라.’입니다. 그 자세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선교사가 몸소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전대에 어떤 돈도 지니지 말 것이며 개인에게 유용한 도구를 필요이상으로 지니지 마라는 요청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물질적인 면에만 눈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보따리, 여벌옷, 신발, 지팡이는 여행에 필요한 물질적 도구입니다. 이에 비해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정신 자세를 뜻합니다.

  평화는 언제나 상대적입니다. 물질적 가난은 자기 자신이 실천할 수 있으나, 평화라는 정신적 가난은 나뿐만 아니라 상대의 동의도 필요한 자세입니다. 또 자신도 쉽게 도달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마음은 평화를 원하면서도 몸은 그와 반대가 되는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속마음은 증오를 품을 수도 있습니다. 평화를 구하는 마음은 자칫 자신마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께서는 먼저 평화를 빌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평화는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먼저 자신이 평화 상태가 되어야 상대방은 경계심을 풀 것입니다. 자신이 잔뜩 날이 서있는데 어떻게 상대방이 평화를 떠올리겠습니까? 예수께서는 평화가 상대적이라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평화가 상대적인 것인 만큼 평화가 거절 되었을 때 오는 피해가 내게 미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이렇게 하였는데 알아주지 않았다는 분한 감정, 억울함, 서운함, 나아가 죄책감까지 들 수 있습니다. 평화가 거절되었을 때 오는 피해는 의외로 큽니다. 자칫 처음에 의도했던 것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이끌고 갈 수도 있습니다. 싸움을 말리려다가 더 큰 싸움으로 치닫거나, 화해하려고 만났다가 더 큰 상처를 받아 영영 원수가 되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지요.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예수께서 내리신 요청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평화를 구하다가 받는 상처를 바로바로 치유하라는 요청입니다. 쓸데없이 길게 끌고 가지 마라는 뜻입니다.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훌훌 털어버려라.’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 충고는 여러 방면으로 쓰입니다. 분노, 우울함, 자책, 억울함, 미련, 후회, 아쉬움, 걱정 등등 오래 담아두면 해로운 감정을 털어버리라는 충고입니다.

  또 예수께서는 자신이 무엇인가 이루겠다는 의식을 하지 마라는 충고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공과 실패가 자신에게 달린 것처럼 생각한다면 착각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되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미련을 두지도 말고, 교만해지지도 마라는 뜻입니다. 미련과 교만의 마음이 또 다른 죄를 가져오게 하고 평화를 깨뜨리는 주범입니다.

  평화를 바라면서 평화를 깨뜨리는 짓을 범하는 일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자신은 발의 먼지를 터는 행동으로 마무리 짓고 또 다른 사명을 찾아 나서는 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머물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먼지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논어에 ‘不遷怒 不貳過’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생긴 분노를 타인에게 옮기지 말며, 한번 저지른 잘못으로 유발되는 제2 제3의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는 뜻입니다. 분노와 잘못은 순환의 고리처럼 연달아서 생기는 법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발의 먼지를 털어내듯 그 악순환을 잘라낸다면 우리는 좀 더 주님의 뜻에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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