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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8 조회수1,236 추천수5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찬미예수님

어제 70명이 1박을 하셨는데 어떻게 잠들은 잘 주무셨습니까?

네!

코고는 소리가 사제관 까지 들립디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주 오래 같이 사셨어요.

젊은 시절에 할아버지가 인물이 좋다 보니까 얼마나 바람을 많이 피웠겠습니까?

늙으니까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지요~~

할아버지가 어느날  할매랑 나라은 천생연분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할머니한테 물었어요

할매, 우리 둘 사이는 뭐라고 부르지?

그러니까 할머니가 쳐다보더니

웬수!

아니 네 글 자루

평생웬수~~^^


세월이 지나가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런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부부들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자식 때문에 살고 그놈의 정 때문에.... 미운정 고운정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지요!

결혼생활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저는 그래서 사제로 살아가기를 정말 잘 했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바리세이파를 혼을 내키면서

말보다는 행동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느냐?

강도만난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셨지요?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통하는 길~~

저도 순례를 갔다가 일부러 예루살렘에서 예리고까지 자전거를 빌려가지고

한 번 가 봤었습니다.

무지무지하게 험해요..... 한 32km 되는데~~

그날 길 떠났다가 타국에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길이 좁고 험하다보니까 강도들이

그 당시에는 떼로 몰려 다녔겠다 ~~

그리고 예루살렘은 해발 700미터이고

예리고는 해발보다 400미터 낮으니까 1100 차이가 나는 거예요.


어떤 여행자가 있었는데 강도를 만나서 다 죽게 되었고~~

그 여행자 곁에 세 명의 신분이 다른 인간들이 지나갑니다.


첫 번째, 사제, 제사장이 지나가요.

두 번째, 레위인이 지나가요!

세 번째,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갑니다.


세 사람의 인간이 지나갑니다.

세 사람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첫 번째가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제사장의 모습은 형식주의 형의 인간을 대표합니다.

지나가다 보니까 누가 다 죽어가요.

‘아이고, 저것 큰일 났네!’

동정은 갔지만 갑자기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떠올랐느냐?

민수기 19장 11절이 떠올라요.

시체에 몸이 닿은 사람은 7일 동안 부정하다!

죽은 자를 만지면 성전에서 절대로 제사를 지낼 수 없다.

민수기 19장 11절이 딱 떠오른 거예요.

도와주려고 하다가

‘아이고,  이 시체 만지면...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이 시체를 만지면 이번에 나한테 돌아올 제사직을 빼앗기고 말지......’

제사장은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즉 이웃사랑에 대한 강한 요구보다~~

양심의 요구보다~~

의식상의 요구를, 형식상의 요구를 더 먼저 따랐던 겁니다.


성당에 오는데 길거리에 누가 배가 아파서 뒹굴뒹굴 굴러요.

양심으로는 너 지금 성당 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빨리 차에서 내려서

저 사람 빨리 병원에 데려가서 일 해결해 주고 가라!

그런데 이 사람 데려다 주고 오면 미사시간에 못 들어갈 건 뻔합니다.

예수님 같으면 미사를 하라고 그랬겠습니까?

아니면 저 죽어가는 사람 데려다가 병원에 입원시키라고 하겠습니까?

어느 쪽입니까?

오히려 그 인간은 그 사람 내버려두고 미사 참례한 것이 죄입니다.

그것 성사 봐야 됩니다.

그런 경우에 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사랑이었습니다.


성당에서는 모범적인 신자이지만 집에서는 빵점짜리 신자들이 많습니다.

성당에서는 1등 남편 소리 듣지만 집에 가면 꼴등남편소리 듣는 그런 형제들 많습니다.

집에서는 엉망진창으로 살지만 성당에 오면 각 액션단체에서 최고의 자리를 누리고 살아갑니다.

자기 기도 방 잘 차려놓고, 촛불 잘 켜놓고

자기 기도 방에는 향수까지 뿌려 가면서 열심히 기도하는데

그 옆에 방에는 풍으로 시어머니가 6년째 누워 있는데, 그 방 방문을 못 열 정도입니다.

똥냄새, 오줌냄새.....

얼마나 머리를 안 감겼는지 시어머니 머리에는 서캐가 허옇게 끼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 옆에 시어머니 그냥 내버려두고 기도하는 것 원치 않습니다.

형식주의 인간은 늘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살아갑니다.


실제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잘 해야 합니다

내 가족에게 잘 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집 밖에 있는 사람한테는 너그럽고 기분 팍팍 쓰면서

집안 식구들 한테는 얼마나 짠돌이 짠순이 노릇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건 형식주의입니다.


두 번째로 레위인이 지나갑니다.

이 레위인은 안전제일형의 인간으로 표현됩니다.


그 당시에 실제로 도둑들은 속임수를 쓰는 수가 종종 있었습니다.

도적 중에 하나가 아픈 척하고 드러누워 있다가 행인이 접근하면

칼을 갖다 들이댑니다.

그렇게 덮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이 레위인은

‘피투성이가 된 저 사람을 보고 도와주어야 하는데....’

하고 마음을 먹고 다가섰지만

‘아니야 저거 가짜일지도 몰라..... 저 놈이 저러다가 피를

가짜로 바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내 목에 칼 들이댈지도 몰라!’

위험을 무릎 쓰고 남을 도울 생각은 없었던 겁니다.

안전위주의 인간형!


요즘 동네에서.... 옆집에서 도둑이야! 하고 소리지르면 뛰어나가 봅니까?

내 방부터 먼저 단속합니다.

요즘은 “불이야~~” 해야  사람들이 바께쓰 들고 쫓아나옵니다.

요즘은 깡패들에게 지나가는 행인이 얻어맞아도.....

그 자리에 수십명이 지나가도 물끄러미 바라보고 그냥 관여하지 않습니다.

내가 괜히 나섰다가 나도 얻어터지고 일 복잡해지니까~~

버스 안에서 앉아 있던 사람이 소매치기가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는 것을 앉아서 다 봅니다.

“도둑이야, 저 놈 잡자!”

하면서 그 사람 때려잡습니까?

그것 빤히 쳐다보면서.... 반응은 두 가지 입니다.

잠자는 척, 갑자기 눈을 감든지... 아니면 창 밖을 바라봅니다.

당하는 놈 니가 알아서 해결하라.... 이겁니다.

괜히 간섭했다가 저 놈이 칼 들이대면 어쩌지?


제가 청주에 있을 때 그 본당 자매 하나가 6개월 행방불명 되었다가

6개월 만에 창녀촌에서 찾았습니다.

30대 중반 된 자매였는데 남편을 만나러 서울역 앞에 있는 대우빌딩,

거기까지 들어가서 남편을 만나고 나온 것까지는 확인이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6개월 동안 행방불명되었던 겁니다.

그 자매가 남편을 만나고 서울역 지하도를 통해서 서울역 광장까지 나왔는데

갑자기 웬 남자가 다가서더니 귀싸대기를 갈기면서

“네 이년, 니가 바람나서 도망가면 내가 못 잡을 것 같아!”

여자는 뒤로 자빠지면서 “아저씨, 누구예요”?“

“어쭈! 서방 보고 아저씨?”

발로 밟고 난리가 난 겁니다.

“너 이리와!”

멱살을 잡고 봉고차 안으로 집어넣으려니까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저 이 사람 모르는 사람이예요!”

그러나 아무도... 서울 역 앞에 있었던 수백명이....

거기에는 전경도 있었고, 경찰도 쳐다보고 있었지만....

어느 사람 하나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고 그럽니다.


그렇게 두드려 맞으면서 억지로 봉고차에 실려서 어디로 끌려갔느냐?

창녀촌으로 끌려간 겁니다.

끌려가서 그날 밤 남자들 다섯명한테 강간을 당했대요

하루에 10여명 이상씩 손님을 받으면서 만신창이가 되었다가

6개월 만에 맨 발로 경찰서로 뛰어간 거예요

6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매는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내가 가끔 가서 안수를 해주고 기도를 해주러 갑니다.

가 보면 그 자매 이야기가 자기는 자기를 그렇게 만든 그 깡패 그놈들,

그놈들도 죽이고 싶지만 더 죽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사람 살려~~”

했을 때 자기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서울역 광장의

수 백명의 인간..... 그 인간들을 더 죽이고 싶대요.

자기는 절대 용서할 수 없대요.


안전위주의 인간은 이기주의를 낳고 무관심을 낳습니다.


무관심의 죄가 얼마나 큰지는 예수님은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에서

명확히 알려주십니다.

부잣집 문 앞에 나자로라고 하는 거지를 데려다 놓습니다.

유다인들의 부자는 밥을 먹을 때 식빵으로 손을 닦고 식빵 쪼가리를

식탁 밑에 버리면 개들이  와서 줏어 먹습니다.

그 개들이나 먹을 식빵 쪼가리를 모아다가 문간방에 있는

나자로를 먹여 살린겁니다.

그리고 부자는 생각했을 겁니다.

‘하느님, 저에게 축복을 주십시오. 저 놈은 그래도 내 덕에 저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부자는 지나다니면서 라자로를 발로 찬적도 없고 몽둥이질을 한 적도 없습니다.

죽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자는 지옥으로 떨어졌고, 라자로는 아브라함 할아버지 품안에 안깁니다.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가 뭡니까?

부자는 지나다니면서 라자로에게 못된 짓을 한 적은 없습니다.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악행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을 못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착하게만 살면 천국 간다!

천만에~~

착하게만 살아서 천국 못 갑니다.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적극적인 선을 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어디에도 착하게만 살면 천국 간다는 말 어디에도 없습니다.

적극적인 선을 행해야 됩니다.


네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선을 행해야 됩니다.

무관심의 죄는 지옥에 갈 만큼 큰 죄입니다.

집안 식구들 내팽개쳐놓고 성당일 하는 것 하느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내 가장 가까운 남편과 웬수처럼 살면서 전교 다니는 것 원치 않습니다.

먼저 내 남편 시어머니, 시아버지.... 끊어졌던 관계를 회복시켜야 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무관심한다고 해서 그것이 마음에 평화가 있는 건 아닙니다.

안 보면 되지요~

천만에~~

그 미운 놈 안 본다고 평화스러워 집디까?

천만에요!

평화라고 하는 것은 그 미운 놈 안 본다고 생겨지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만나서 해결하고 그러다가 안 되면

‘주님, 저 할 만큼 했습니다.’

이래야 되지~~

‘아유, 저놈 뵈기 싫어, 저 인간 교중미사 잘 나오던데 나는 저녁미사 나가야 되겠어!

이런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갑니다.

사마리아인은 실천형의...신앙형의 인간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크리스찬입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먼 곳을 규칙적으로 방문해서

장사하는 사람이었고 여관주인을 그를 믿었던 겁니다.

그는 전통적인 유다인들의 규칙대로 살지는 못했지만.....

비록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이단자였을지는 몰라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에는 그가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줍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그의 마음에 깃들여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을 알고 규칙을 알면서도 스스로 하느님 앞에

의인인척 자처하는 사람보다

하느님의 뜻을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천국을 차지할 수 있다!

라고 얘기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두 번이나

 “가서 너도 그렇게 하라!”

즉 형식위주로 살지 말고~~

안전위주로 살지 말고~~

무관심주의자가 되지 말고·~

가서 실천하라!


이웃사랑의 실천은 단순히 동정을 느끼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실제적이어야 됩니다.


분명히 제사장도 레위인도 상처받고 죽어가는 사람에 대해서

왜 동정을 못 느꼈겠습니까?

동정이 참된 동정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드러나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입니다.


야고버서 3장 17절에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야고버서 3장 22절에는 믿음은 행동 때문에 완전하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들, 즉시 이 미사 후에라도 찾아갈 사람은 찾아가고

전화 할 사람은 즉시 전화를 거십시오.

화해할 사람 미루지 마십시오!

내가 도와주어야 될 사람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다면 오늘 집에 가서

즉시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누구나가 다 동정하는 마음은 갖습니다.

신자 아닌 사람이라도 어려운 사람 보면 동정을 갖습니다.

그러나 동정은 동정이지요~~

작은 행동 하나가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


오늘 우리들은 제사장의 모습으로 이제껏 살아왔는지~~

레위인처럼 안전위주형의 인간으로 살아왔는지~~

무관심주의자로 살아왔는지~~

아니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실천형의 착한 사마리아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합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ㅡ2007. 07. 15일  연중 제 15주일 가르침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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