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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89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7 조회수974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14주일 화요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마귀가 들려서 말 못하는 이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또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여러 병자들과 허약한 이들을 치유한 복음입니다. 그리고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는 말씀으로 오늘 복음은 끝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신앙은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하여 복을 내려달라는 신앙이 아니라 불우한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도와주는 일꾼이 되는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이에게 말을 할 수 있도록 치유한 기적은, 불의에 침묵하는 저희들에게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불의에 침묵하는 자는 말 못하는 벙어리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저희들은 마귀들 때문에 모두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 마귀들은 우리들 속에 기생하는 마귀들도 있고, 바른 말을 하면 잡아가는 마귀들 때문에 벙어리로 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벙어리처럼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으므로 오늘 복음은 이런 저희들을 치유하고자 하신 듯합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심은 바로 이런 측은지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성을 쌓는 것은 바로 이런 측은지심을 키워나가는 것이며 이런 측은지심이 있어야 사랑도 실천하고 자비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영성만 쌓는데 그 목적이 있다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는 이런 말씀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수확의 의미는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 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며 일꾼은 그들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은 자비를 실천하고 불우한 이웃들과 함께하며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꾼이 되는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성은 자비를 실천하는 원동력이므로 자비의 실천이 없는 영성은, 측은지심이 없는 영성은 영성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꾼은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 영성이 필요한 것이며 자신만이 고고해 지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영성을 생각하는 사람은 남을 위해 봉사하기 보다는 오히려 군림하려고 할 것입니다.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하셨습니다. 수확할 밭의 주인은 당연히 하느님이시고 수확할 대상은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하느님은 바로 이들을 돌봐주시는 주인이지만 그들을 돌봐주는 일을 하느님은 감사하게도 저희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에게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고 그 때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하셨습니다.(요한 21,17) 이렇게 당신의 양들을 베드로 사도에게 돌보아라하신 이유는 하느님은 우리 인간 세상사에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자비를 실천하여 저희들 문제는 저희들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알려주는 말씀일 것입니다.

일꾼들을 부르려면 일꾼들이 해야 할 일이 있어야 일꾼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지도자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 하신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도 일꾼들이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하고, 일꾼인 저희들에게 지시를 하면 저희들은 그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순종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회가 요구하는 일꾼은 주님의 양들을 돌보며 그들과 함께하는 일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교회를 위한 그런 일꾼을 더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일꾼들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챙겨주는 것이 교회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목자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불의에 항거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마귀 들린 사람처럼 벙어리로 살지 않고 시국선언을 하였다고 불이익이나 주지 않았으면, 비난이나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불쌍한 이웃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런 측은지심이 영성임을 알았습니다.
저희들도 이런 측은지심을 나날이 키워서
불우한 이웃들을 돌보는 일꾼이 되고
우리의 이웃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알리는 참된 일꾼이 되도록
의로움과 자비의 성령님께서는 언제나 저희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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