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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88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6 조회수362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가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6

18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의 복음으로 선정된 복음과 같은 내용으로 그날 주일 복음은 마르코 복음이었으며 오늘은 동일한 내용의 마태오 복음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낸 오늘 복음은 공관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있고 요한복음서에서는 마리아와 마르타의 동생인 라자로를 살려낸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의 내용은 다르다 할지라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낸 점에 있어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기적은 육신을 치유한 것으로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지만 육신의 치유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한 것으로 묵상하고 있으며 오늘 묵상은 연중 제13주일(6/28) 묵상과 크게 다를 바 없으므로 앞 묵상으로 대체하고 오늘은 복음서에 기록된 이적에 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는 일처럼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이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가장 큰 대죄가 될 것이며 만약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면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어 우리 인류에게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대재앙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하느님이 주신 가장 공평한 선물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천년만년을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욕망이기도 합니다. 이런 허황된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어느 종교를 가릴 것 없이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복음과 같은 소생의 이적 등은 자칫 잘못 이해하면 허황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으며, 이런 이적 등을 일부에서는 악용하는 일도 있으며 또, 실제 사실로 믿고 있는지 그 여부에 따라 신앙의 척도로 삼는 폐단도 있으므로 심히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이런 이적에 관한 내용은 당시에는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무척 유용하였겠지만 지금의 신세대에게는 오히려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이런 이적에 관한 기록에 대하여 현재는 이를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그대로 믿었을 것 같습니다. 불과 2백여 년 전 일이지만 우리 신앙을 고수했던 우리 선조 순교자들에게서도 이적이 일어났음을 믿고 신앙을 더 굳건히 한 기록이 있으므로 이를 잠시 소개하려고 합니다.

북경의 구베아 주교는 한 장의 서한을 이 땅의 우리 천주교인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서한의 내용은 “그리스도인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됩니다. 산소를 찾아가 성묘를 해서도 안 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극도로 싫어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느님 한 분께만 경배해야합니다.” 이런 내용이 적힌 “조상제사 금지령”에 관한 서한입니다. 지금도 이 서한이 유효하다면 우리 천주교는 지금도 여전히 박해를 받을 것 같습니다.

전라도 진산(지금의 충남 금산)에 사는 윤지충(다산 정약용의 외사촌)은 이 서한에 따라 조상의 신주를 불태웠고, 제사를 폐지하였으며 성묘를 없앴습니다. 이를 알게 된 조정에서는 "윤리강상죄'의 죄명으로 윤지충을 체포하여 배교를 설득하였으나 뜻을 굽히지 않자 군문효수형에 처하여 이 땅의 최초 순교자가 되었으며 그 목을 전주 풍납문 성벽에 일주일 동안 달아 놓았습니다.

이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때는 엄동설한으로 조선 천지가 꽁꽁 얼어붙었는데 윤지충이 흘린 피만은 일주일 내내 전혀 얼지 않은 채 처음 흘러내릴 때의 뜨거움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이 소문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사실을 확인하러 몰려든 사람들은 또 한 번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불치병 환자들이 윤지충이 흘린 피에 닿자마자 씻은 듯이 낫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으며 이 사실이 신도들에 의해 기록되어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졌습니다.

이천년 전의 이런 소문들을 모와서 복음서에 이적 내용들이 기록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하트마 간디도 이런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착각한 사람들이 있었던 같습니다. "나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람 중에는 내가 기적을 행하기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진리를 위해 몸을 바치려는 사람으로서 맹세하건데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이는 간디의 말이지만 예수님도 이와 동일한 말씀을 하셨으리라는 느낌이 여러 말씀에서 느껴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사실 그대로 믿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지, 또는 성경이기 때문에 그 어떤 내용도 온갖 머리를 짜내서, 온갖 경험과 지식을 동원하여 합리화시켜서 묵상해야 하는지, 이런 생각들을 해 보는 것은 이에 대한 답을 찾기보다는 이런 생각들을 통해서 성경을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를 몇 자 적어본 허접한 글로 오늘 묵상을 대신하며 봉헌기도로 주간 첫날을 맞이합니다.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고
저에게 영혼 육신을 주시어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라 하셨나이다.
저는 비록 죄가 많사오나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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