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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5일 야곱의 우물/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5 조회수439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거센 풍랑에 중형 기선이 나뭇잎처럼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승객들은 공포와 불안에 떨었습니다. 살아있다는 생각마저도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 아이만은 파도 구경이 재미있다는 듯이 태연하게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도 이상해서 중년 여성이 아이에게 묻습니다. “얘야, 너는 무섭지도 않니?” 했더니 그 아이는 “아니오. 아주머니는 무서운가요?”라고 되묻자 그녀는 “무섭다마다, 나는 죽을 지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우리 아버지가 이 배의 키를 잡고 계시거든요. 우리 아버지는 일등 선장이세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아주머니도 무사하실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센 풍랑 속에서도 공포에 떨지 않는 아이는 아버지가 일등 선장이라는 사실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능력 밖의 거센 풍랑이 닥치면 걱정을 합니다.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쓸데없는 걱정’ 이라는 글에서 한 연구기관의 조사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사람이 걱정하는 것 중에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사건에 대한 걱정이 40퍼센트, 이미 지나간 과거 사건에 대한 걱정이 30퍼센트,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에 대한 걱정이 22퍼센트, 걱정의 4퍼센트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4퍼센트는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해결해야 할 걱정은 4퍼센트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96퍼센트의 쓸데없는 걱정으로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고 그들에게 파견 받은 이의 자세와 각오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전하러가는것은마치양을이리떼가운데보내는것과 같다고하시며 너희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마태 10,16)되고 “사람들을 조심”(17절)하며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 까 걱정하지 마라. ”(19절)하고 특별한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살아갑니다. ‘걱정도 팔자다. ’ 란 속담이 있듯이 우리는 날마다 걱정이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근심이란 멍에를 지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걱정부터 합니다. 최근 들어 부쩍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면 아마도 ‘스트레스 ’ 일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일종의 걱정이 만들어 낸 부산물입니다. 몸이 건강해도 암에 걸릴까 걱정하고, 재산이 많아도 그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걱정, 지금 행복하면서도 혹시 불행이 찾아들까 걱정을 합니다. 사랑하는 순간에도 그 사랑이 어느 날 떠나버릴까봐 걱정합니다. 집에 있어도 걱정, 나가 있어도 걱정입니다.

이렇게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신뢰하며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걱정은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걱정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주님의 말씀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가로 막습니다. 사탄이 우리에게서 주님의 말씀을 앗아가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걱정’ 입니다. 계속적인 걱정은 ‘교만’ 과 같습니다. 이는 문제 해결에 주님이 필요 없음을 뜻합니다. ‘겸손’ 은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지만 걱정은 우리가 자신을 돌보려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주님 발 앞에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친히 내 삶을 도와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기회 있을 때 마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주시리라. ”(시편 37,5)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55,23) “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겨라.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잠언 16,3)라고 우리 삶을 당신께 맡기라고 당부하십니다. 맡긴다는 것은 위탁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환자가 의사에게 몸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고혈압 증세를 일주일 동안 기록하라고 하면 그대로해서 의사에게 보고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 순종하고 보고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주님께 생활 속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 삶을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내 삶을 내가 살겠다고 하면 나는 ‘과거의 짐, 현재의 짐, 미래의 짐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 를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기느냐, 않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주님께 맡기고 사는 사람은 기쁨과 감사와 축복의 삶을 살게 되지만,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사람은 걱정과 불안과 절망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문제로 고통당하고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는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라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더욱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11,28) 라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의지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고 무거운 짐까지 맡아주
실 것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내가 주님께 90퍼센트만 맡기고 10퍼센트 수고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의지 100퍼센트를 온전히 맡기길 원하십니다. 이렇게 온전히 맡겼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 전부를 맡기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도록 우리 삶을 성령께 맡겨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그 말씀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도록 은혜를 청합시다.
정애경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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