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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인생은 미완성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30 조회수1,256 추천수21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13주간 화요일 - 인생은 미완성

 

 

 

한 중년 남자가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네는 어쩌다가 지금까지 결혼을 못 했나?”

“난 완벽한 여자를 찾으려 했지. 완벽한 여자를 찾아서 온 세상을 헤매 다녔네.”

“그렇다면 완벽한 여자를 못 만난게군.”

“한 명 만나기는 했었지... 근데 그 여자는 완벽한 남자를 찾고 있더군.”

“ ... ”

 

만약 완벽한 사람을 찾고 있다면 그 사람은 죽기까지 결혼은 못 할 것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례가 신앙의 완성이 아니라 완전한 믿음을 향한 출발인 것처럼, 결혼은 완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 둘이 만나서 서로 완전으로 향하는 출발점입니다.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면서도 성소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이야기 하던 중, 그 분은 요즘 경제가 어려워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려고 하는데 자신은 그런 사람은 되기 싫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완전한 하느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전에 수원교구 교구장님이었던 김남수 주교님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분이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은 어렸을 때 자신의 집에 오신 신부님께 부모님이 흰 쌀밥과 계란을 대접해 드리는 것을 보고서였다고 하십니다. 그 분은 단지 계란과 쌀밥이 먹고 싶어서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셨던 것인데 결국 주교님까지 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 성소의 계기는 온전하지 못하였지만 살면서 그 동기가 정화되었고 진정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목자가 되셨습니다. 처음부터 완전하게 출발하려고 해서는 출발 자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유다도 비록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는 하였지만 예수님께서 뽑아주셨으니 성소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을 뽑지 않습니다. 완전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뽑으시고 또 뽑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성소를 완성시켜가는 것입니다. 적어도 성소의 길로 들어가 나의 영혼을 잃게 되지만 않는다면 도전해 볼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부탁에 의해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믿음을 한 번 보십시오. 그들은 서로서로 이렇게 묻습니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바람과 호수가 복종하는 이유는 그 분이 바람과 호수를 만드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직접적으로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 40년가량이 되어서도 여전히 ‘하느님의 아들’로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 70년가량이 흘러서야 비로소 요한복음에 의해 예수님은 하느님이셨다는 직접적인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느님임을, 즉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들까지도 사실은 예수님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주 부족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람과 호수가 예수님의 말에 복종하는 것이 신기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수많은 기적과 말씀을 듣고도 이렇게 불완전했는데 우리들은 어째서 완전한 응답을 먼저 바라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본성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음에도 그 분을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처음부터 완전한 믿음과 확신을 지닐 수 없습니다. 인생도 미완성이고 신앙도 미완성이고 그 분을 아는 것도 미완성이고 성소도 언제나 미완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도 우리 각자의 예수님, 하느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온전한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는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나올 때 자신들을 이끌어 내신 하느님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하느님이 곧, 금송아지였습니다. 당시 소는 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니 가장 힘이 세다고 생각하는 송아지를 만들고 하느님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우리 안에 하느님을 그리고 살지만 완전한 하느님의 모습을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이란 곧 ‘하느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하느님과 최대한 근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세례나 견진 교리 때 배운 하느님의 모습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배워나가고 정화해 나가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도정(道程)에 있는 것이지 누구도 완전에 도달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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