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2,54-59(연중 29 금)

낙엽이 바람에 쓸려 다닙니다. 가을이 저물어 가는 “징조”입니다. 이 가을의 “징조”를 읽게 하는 헤르만 헤세의 시 “낙엽”이 떠오릅니다.

꽃마다 열매가 되려 하고

아침은 저녁이 되려 하니

변화하고 없어지는 것 말고는 달리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름까지도

가을이 오자 조락(凋落)을 느끼려 하매

나뭇잎이여, 바람이 그대를 유혹하거든

끈기 있게 가만히 매달려 있거라

그대의 유희를 계속하며 거역 지 말고

가만히 내버려 둘지니

바람이 그대를 떨어뜨려서

집으로 불어가게 하여라.

이처럼, 낙엽이 바람에 휩쓸리는 것을 보고 가을이 저물어 감을 알듯이, 몸이 으스스 떨리면 몸살이 옴을 알듯이, 오늘 <복음>은 “이 시대”의 징표를 풀이하고 대처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그들이 “이 시대”의 징표를 읽지 않는 것은 그들이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그 징표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고, 거짓과 위선으로 가린 까닭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선자들”이라고 책망하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루카 12,56)

책망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촉구하십니다. “시대의 징표”를 읽고,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라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군중들에게 하고 계십니다. 군중들이“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과 같은 거짓 지도자들의 판단에 의존하면서 책임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판단치 못하느냐?” 하고 무능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하고 그들의 회피와 위선을 질책하십니다. 사실,그들은 자의로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위선된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무관심과 회피와 침묵으로 가리고 있는 위선 말입니다. 사실, 이는 초라한 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루카 12,58)

바르게 행동하라는 엄한 경고입니다. 합의를 보아서 소송을 피하지 않으면, 결국 재판을 받아 감옥에 갇히고 끝내 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니, 재판에 붙여지기 전에 화해라하는 말씀입니다. 곧 “징조”를 잘 읽고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당신께서도 역사의 징조를 읽으셨고,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시어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는 끊임없이 시대의 징조를 읽고 해석하고 응답하였습니다. 그것들은 특별히 교종들의 <사회회칙>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를 들면, 산업혁명시대의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에 대응하여 레오13세 교종께서 1891년에 [새로운 사태]라는 회칙을 발표하였고, 또한 이에 대한 교회의 응답을 촉구하는[40주년]을 비오 11세께서는1931년에 발표하였습니다.

또 냉전시대의 인권에 대해 요한23세 교종께서는 [지상의 평화](1961)를 발표하였고, 식민화와 빈부격차와 문화충돌을 대처하여 바오로 6세의 [민족들의 발전](1967)을 발표하셨습니다.

또 요한 바오로 2세의 [노동하는 인간](1981)과 [백주년](1991)은[새로운 사태]의 90주년과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사회문제를 재해석하였고, 베네딕도 16세의 [진리안의 사랑](1009)에서는 자본주의 확산과 세계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환경을 주제로 한 첫 번째의 회칙인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교종께서는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으로 기술만능주의와 왜곡된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통합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다양한 차원의 대화와 생태 교육을 촉구하셨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끊임없이 시대의 징조를 읽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늘의 사회, 윤리적인 문제에 적용하여 해석하고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우리 시대의 징표를 풀이하고 올바른 판단으로 시대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권고문헌 [복음의 기쁨]에서, “모든 공동체가 시대의 징표를 주의 깊게 살피도록 권고”(51항)하셨습니다. 그리고 돈이 우상화 된 신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물질만능의 물신주의의 병폐와 무관심의 세계화 등을 지적하시면서,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하는 교회에서 한 결음 더 나아가 가난한 교회, 곧 함께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공빈(共貧)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시대가 징표”를 읽고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라”는 하느님의 촉구에 응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