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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1028 -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28 조회수1,434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7
10 28 () 가해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복음 묵상

Feast of Saints Simon and Jude, Apostles

에페소서 2,19-22
루카복음 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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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2,19-22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Reading 1


Eph 2:19-22 


Brothers and sisters:
You are no longer strangers and sojourners, but you are fellow citizens with the holy ones and members of the household of God, 
built upon the foundation of the Apostles and prophets, with Christ Jesus himself as the capstone.
Through him the whole structure is held together and grows into a temple sacred in the Lord; in him you also are being built together into a dwelling place of God in th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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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Gospel


Lk 6:12-16

Jesus went up to the mountain to pray, and he spent the night in prayer to God.

When day came, he called his disciples to himself, and from them he chose Twelve, whom he also named Apostles: Simon, whom he named Peter, and his brother Andrew, James, John, Philip, Bartholomew, Matthew, Thomas, James the son of Alphaeus, Simon who was called a Zealot, and Judas the son of James, and Judas Iscariot, who became a tra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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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10 28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택하신 방법은 스스로 인간이 되신 강생의 신비입니다. 인류 역사의 구체적 시간, 구체적 장소라는 제한된 조건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사업과 복음 선포를 위해서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 열두 제자는 다양하면서도 부족한 인간의 조건을 모두 지닌 우리의 대표자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시몬과 유다는 복음서에서 두드러진 활동이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뜨거운 피를 가진 이들입니다. 시몬은 로마에 반대하여 유다 민족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걸고 열혈당원으로 활동하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자기 민족에 대한 식민 통치를 끝내려고 목숨을 걸고, 군사 훈련과 테러 훈련까지 이겨 내며, 나라를 배반한 매국노들의 응징에도 앞장섰던 피 끓는 애국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뒤에도 페르시아에서 선교하다가 톱으로 몸을 자르는 극한 순교로 예수님의 부활을 끝까지 증언했습니다. ‘타대오’라고 불리는 유다도 예루살렘 멸망 후 페르시아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뽑으시기 전에 조용히 산에 오르시어 밤을 새워 기도하십니다. 당신의 제자들을 뽑으시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의 뜻으로 가득 채우는 것, 그리고 두려움을 버리고 세상에 나서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본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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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 1028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흩어진 옛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새롭게 일으킬 새 이스라엘의 열두 제자들을 뽑으시려고 산으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고민하시며 하느님께 청하셨을까요? 그것은 열두 제자들의 출신과 성분을 보면 압니다.
먹고사는 일에 매달린 어부들, 민족주의적 열혈당원 시몬, 외세에 힘입어 사는 세리 마태오, 예수님을 배반할 유다. 열두 제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데 특별한 능력과 재주를 가진 이들도 아니었고, 사회적 명망이 높거나 배운 지식층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새로운 하느님 백성 공동체는, 신분과 출신, 능력과 재주와 무관하게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퉁잇돌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느님의 한 가족으로 서로 잘 결합된 거룩한 성전입니다.
새 이스라엘로 상징되는 교회는 바로 이런 예수님의 뜻 안에서 세워졌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능력과 재주가 탁월한 이들이 중심이 되어 선택된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이방인과 외국인을 몰아내던 옛 이스라엘 공동체의 복원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하늘의 별만큼 많은 후손을 약속하신 것은, 세상의 모든 이가 어떤 차별도 없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초대되어 있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택된 이스라엘과의 옛 계약을 폐기하시고, 새 이스라엘 백성인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의 새 계약을 세우십니다. 열두 제자는 바로 이런 교회의 초석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열혈당원 시몬과 용감한 타대오 역시 차별 없이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 이들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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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0 28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늘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제가 외국인 입장이기도 했지만, 국적이 다르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낯선 이방인이라는 이질감을 느끼며 살아야 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
아무리 국적이 다르고 기질이 달라도, 민족주의적인 열혈당원 시몬과 외세의 끄나풀로 여겨지던 세리 마태오가 한 울타리 안에 있어도, 장차 배반자가 될 유다를 열둘 가운데 한 사람으로 품고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하여 사도들을 기초로 세워진 공동체 안에서는 이방인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방인으로 여겨져서는 안 되지요. 모퉁잇돌이 하나이고 기초가 하나인데, 그 위에 지어진 건물의 여러 부분들이 어떻게 서로 너는 이방인이라고 배척하면서 떨어질 수 있겠습니까?
모퉁잇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기초인 사도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치의 근원이 되십니다. 같은 신앙 안에서 서로를 한 시민으로,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가 하나둘 모여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아름다운 꼴을 갖춘 성전이 지어집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 안에 일치가 없다면 그것은 심각한 병의 징후입니다. 그것은 그 공동체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거나, 공동체에 믿음이 없거나, 그 공동체가 사도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에서 떠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즈음 학교에서, 사회에서, 심지어는 교회와 가정 안에서까지 다민족, 다문화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조국을 위한 열혈당원이라는 신분에서 하느님과 복음 선포를 위하여 열혈당원이 된 시몬과, 불가능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힘겨워 하는 이들을 돕는 주보성인으로 알려진 유다 타대오(용감한 사람이라는 뜻) 사도의 전구로 여러 가지 차별을 극복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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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 1028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오늘은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제1독서와 복음을 통하여 사도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기 전 산에서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도들이 교회의 기초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사도들이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늘 나라를 세상의 권세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주님과 삶을 가장 가까이 나눈 이들이지만 그분의 수난이 다가오자 두려워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 곁으로 다시 모여들었고, 끊임없이 회개하며 스스로를 정화해 나갔습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전하고자 목숨까지 내놓으며 마침내 교회의 든든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 가운데에서 그들을 뽑으신 이유를 묵상해 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감탄하거나 칭찬하는 화려한 장신구와 같은 이들이 아니라 투박하지만 긴 시간의 단련을 통해 마침내 진가를 보일 ‘원석’과 같은 이들을 택하시어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빛나는 진실을 간직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못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열정과 인내와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그들에게서 보셨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두 사도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적 약점을 이겨 내며 주님의 길을 굳건히 걸었던 ‘진실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지난여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크나큰 감동을 남기시고 이 땅을 떠나실 때 시인 고은이 남긴 말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그의 얼굴이 보여 주고 갔다. 나는 그의 말보다 그의 얼굴에서 그 진실을 만났다.
교회의 기초인 사도들은, 신앙인의 얼굴은 다름 아니라 진실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 분들입니다. ‘작은 사도’로 살아가는 우리 또한 화려한 겉치레가 아니라 ‘진실한 얼굴’을 갖도록 애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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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10 28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오늘 복음의 내용을 사도들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더니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다음 날 많은 제자들을 불러 세우신 뒤, 그 가운데에서 열둘만 뽑으시어 ‘사도’로 임명하셨습니다. 이렇게 뽑힌 사도들은 얼마나 흥분되었겠습니까? ‘다른 제자들보다 그다지 잘난 것도 없는데 왜 하필 나를 뽑으셨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을 것이고,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의기양양해진 사도들은 평지에 내려와서 더욱 흥분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병을 고쳐 주시고, 더러운 영들도 쫓아내셨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열둘은 ‘사도’라는 자리에 오른 만큼, 예수님의 이러한 놀라운 능력을 전수받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능력으로 무언가 큰일을 하시면 그 일의 결과를 자기들도 함께 누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삶은 그들의 인간적인 흥분과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삼 년 동안 지내면서 집도 없이 살아야 했고, 결국 스승님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뒤에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이 애당초 가졌던 기대와 실제의 삶은 아주 다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불행해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뜻하신 삶을 그대로 산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인 때의 생각과 실제의 삶은 차이가 많을 것입니다. 사제들의 서품이나 수도자들의 서원 또한 받기 전과 실제의 삶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처럼, 우리도 기대와는 다르게 전개되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담긴 주님의 뜻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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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10 28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연중 제30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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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 1028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예수님께서 밤새 기도하시고 나서 날이 새자, 제자들 가운데 열둘을 뽑으십니다. 마치 합격자를 발표하시듯, 그를 따르던 사람들 가운데 당신 곁에 가까이 두실 사도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사도들을 뽑으시면서 사도가 될 자격으로 과거 경력이나 능력을 묻지 않으십니다. 어부이든, 세리이든, 능력이 있든 없든 이런 것은 그분의 합격 기준이 아닙니다. 한편 그들 미래에 대해서도 묻지 않으십니다. 당신을 팔아넘기든 배신하든 있는 그대로 부르십니다.
하느님 편에서는 계획이 있어 사도들을 부르셨지만, 우리 편에서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은 세속적으로 보면 기구한 운명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순교했고,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부름을 받지 않았으면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한평생 살았을 텐데, 그들은 모두 자신의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떠돌이 삶을 살다가 순교를 해야 했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이러한 부르심으로 시작되었고, 그 부르심은 교회를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회에 한 발 더 깊이 봉사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조건이나 능력 때문에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부름 받은 것입니다. 부르심 그 자체가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은 바로 이들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때로는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아야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품고 사는 가장 복된 운명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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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028)


주님께서는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셔서 밤을 새우십니다. 밤새 하느님께 기도하신 다음 날,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던 무리 가운데 열둘을 뽑으십니다. 당신 나라의 도구,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쓰시기 위함입니다.
뽑힌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돈 많은 부자도 없고, 잘 배운 지식인도 없으며, 고관의 자리를 차지했던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유명세를 탄 사람들도 아니며,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지도자들도 아닙니다. 탁월하지도 특출나지도 않은 그저 보통 사람들일 뿐입니다. 다만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그들은 주님께서 부르시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맨몸으로 주님을 따라나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매력에 푹 빠져 그분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어 맡긴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용기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니 그저 따라나섰을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재주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배 오른쪽에 그물을 치라고 하시니 그대로 쳤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에게는 별다른 재주와 용기는 없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엇이든지 다 하는 충직한 순종의 태도만 있을 따름입니다.
신앙은 곧 주님에 대한 충직한 순종입니다. 그것은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목숨을 거는 삶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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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028)


복음 말씀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명단이 나옵니다. 뛰어난 인물들이 아닙니다. 명성이 자자하거나 화려한 직업을 가진 분들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훗날의 초대 교회를 이끌어 갑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끌어 주시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르기에 거저 하늘이 돕는다고 말합니다.
조선조 말기의 화가 ‘장승업’은 종이 파는 가게의 ‘노비’였습니다. 그는 주인 아들의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웠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장의 그림을 그리자, 그의 천재성은 드러났고 마침내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그림을 알아본 사람들이 그를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안견, 김홍도와 함께 조선 시대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며, 화가로서는 최고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의 재능은 하늘이 내린 것이었습니다. 천민도 신분의 벽을 넘을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삶은 후대의 개혁가들에게 큰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느님의 뜻’은 머물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전하고자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오늘 기억하는 ‘시몬과 유다’ 사도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업적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알려지는 자체에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 일은 주님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합니다. 사람을 염두에 두면 잡음이 생깁니다. 사도들의 삶에서 묵상해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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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0 28)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의 12제자 명단이 나옵니다. 뛰어난 인물들이 아닙니다. 명성이 자자하거나 화려한 직업을 가진 분들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훗날의 초대 교회를 이끌어 갑니다.
열두 제자는 똑똑해서 선택된 것은 아닙니다. 용기가 넘치거나 결단력이 뛰어나 뽑힌 것도 아닙니다. 스승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무서워서 숨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오늘의 신앙인들은 똑똑한 지도자만 원하고 있습니다. 용기 있고 결단력이 분명한 지도자가 아니면 고개를 젓습니다.
열두 제자는 예수님께 빠져 있었던 이들입니다. 그분이 좋아서 직업과 가족을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충직성을 지녔기에 선택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닮습니다. 말과 행동이 비슷해집니다. 물들어 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제자들은 사도들이 되었고 예수님의 모습을 지니게 됩니다.
오늘은 시몬과 유다 사도 축일입니다. 그분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업적이 없기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알려지는 자체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일은 주님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사람에 관심 두면 잡음이 생깁니다. 사도들의 삶에서 묵상해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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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0 28)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로마는 이 이스라엘 민족을 제압하고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세무 조사를 통하여 반발 세력의 기를 꺾었습니다. 이러한 정책에 동원된 이들이 세리였습니다. 그 때문에 유다인들은 세리들을 죄인 중의 죄인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세리 가운데 한 사람이 성전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의 기도는 이 한마디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며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변명이 아닌 부끄러움의 고백이었습니다.
한편 바리사이는 세리를 업신여기며 자신의 행위를 늘어놓는 것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랑을 한 셈입니다. 그의 기도에는 애절함이 없습니다. 그는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을 의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은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지 않으면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어린이의 신앙입니다. 바리사이는 자만과 우월감이라는 벽 속에 갇혀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바리사이처럼 기도를 바치지는 않는지 곰곰이 돌아봅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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