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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 28일 야곱의 우물- 마르 5,21-43/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28 조회수413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주십시오.”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그 가운데 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즉시 사람들이 그분께로 몰려옵니다. 그러자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자신의 딸을 구해 달라고 청합니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주십시오.”(23절) 마르코와 루카(8, 42)는 야이로의 딸이 ‘죽게 되었다.’고 한 반면에, 마태오(9, 18)는 그 딸이 이미 ‘죽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병이 위중하여 시각을 다투는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회당장은 유다인들의 지도자로 당시 예수님과 대립 관계에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와는 반대편 세계에 속해 있던 사람이지요. 그러나 딸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음에도 이제 죽어가고 있는 아이 앞에서 그에게는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지막 희망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여인이 ‘하느님의 사람’에게 달려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수넴 마을에 사는 여인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자, 예언자 엘리사에게 달려갑니다. 엘리사가 자신의 시종 게하지를 보내 아이를 살려내라고 하였으나, 여인은 한사코 엘리사에게 직접 아이를 치유해 달라고 합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살아계시고 어르신께서 살아 계시는 한, 저는 결코 어르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일어나 그 여자를 따라나섰다.” (2 열왕 4, 30) ‘하느님의 사람’에 대한 여인의 믿음과 아들에 대한 애타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에 앞서 엘리사의 스승인 예언자 엘리야가 사렙타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낸 이야기도 이와 비슷합니다.(1열왕 17, 17 - 24) 회당장 야이로의 얼굴에 사렙타 과부와 수넴 여인의 모습이 겹칩니다. 그러나 이제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 대신에 ‘하느님의 아드님’ 이신 예수님이, 그리고 여인의 아들 대신에 야이로의 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야이로의 간청을 받은 예수님이 그를 따라나섭니다. 그런데 그분을 둘러싸고 있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던 또 다른 인물이 있었습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을 앓으며 병을 고치려고 여러 의사에게 보이고 가산마저 탕진했으나, 병은 악화되고 사람들에게 ‘불결한 여자’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온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은 여자가 부정하게 되는 경우를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자에게서 무엇인가 흐를 경우, 곧 그곳에서 피가 흐를 때에 그 여자는 이레 동안 불결하다. 그 여자의 몸에 닿는이는 모두 저녁때까지 부정하게 된다. 어떤 여자가 불결한 기간이 아닌데도 오랫동안 피를 흘리거나, 불결한 기간이 끝났는데도 피를 흘리면, 피를 흘리는 동안 내내 그 여자는 부정하다. 불결한 기간일 때처럼 그 여자는 부정하다.”(레위 15, 19. 25) 그 여인의 귀에 예수님의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이제 이 여인에게도 그분이 마지막 희망입니다. 마침내 그분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
에 끼었습니다. 여인은 수치심에서 예수님 앞에 감히 나서지도 못하면서, 그분의 옷에 손만 대어도 자기 병이 나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절대적이며 절실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마르 5, 29) 그 여인과의 접촉으로 예수님 당신이 불결해지기는커녕 예수님은 여인에게 정결함을 주셨습니다. 그분 옷자락에 여인의 손이 닿는 순간 기적적인 치유의 힘이 나간 것입니다.

신약성경 위경 가운데 하나인 〈베드로 행전〉에 나오는 ‘베로니카의 수건’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가는 동안 땀을 흘리시자,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예수님께 수건을 드려 땀을 닦으시게 하였습니다. 그 뒤 그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예수님의 얼굴에서 무엇이 나가서 그 수건에 당신 모습을 남기게 되었을까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였으나, 이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당신 옷에 손을 댄 사람을 찾으십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마르 5, 30) 여인이 두려워 떨며 나아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생명을 낳고 살리는 예수님의 힘에 대한 믿음이 그 여인에게 기쁜 소식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34절)

고통 속에 있던 한 여인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접하고 있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 죽음의 소식이 전해집니다.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아이가 죽었으니, 예수님을 더 이상 수고롭게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36절) 고 하시며, 그 집으로 가시던 발길을 재촉합니다. 이 상황에서 ‘믿기만 하라.’는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리고 아이의 죽음에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39절) 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비웃었다는 것은, 그들의 눈에는 아이의 죽음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서 이 ‘죽음’은 단지 자는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지나가는 현상이라고 말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 요.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요한 11, 11)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한마디 말씀으로 자고 있는 소녀를 일으키십니다. ‘탈리타 쿰!’ 소녀에게 일어나는 즉각적인 결과는 엘리야나 엘리사 예언자의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그들은 죽은 아이에게 특별한 몸짓으로 차츰 자신의 생기를 전달해 주어 다시 소생시켰으나, 예수님은 당신 손길과 말씀 한마디로 야이로의 딸을 곧바로 일으키셨으니까요.
당신의 옷자락에 닿은 여인의 손과 아이의 손을 잡으신 당신의 손을 봅니다. 오늘 그 손이 되고 싶습니다 !
강선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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