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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희망의 힘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27 조회수784 추천수14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13 주일 - 희망의 힘

 

 

 

대단한 협상가이면서 특히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950년 노벨상을 수상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랠프 존슨 번치 (Ralph Johnson Bunche 1904-1971, USA)’입니다.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1948년, UN의 협상 대표가 암살되자 그가 이 일을 이어 받아 탁월한 협상 능력으로 휴전을 이끌어 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세상에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은 없습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지도자들이 있을 뿐이지요.”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평화와 특히 유색인종을 위한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1971년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큰일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힘은 그의 어린 시절에 있었습니다. 그의 집은 매우 가난했고 1년 사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시에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어머니의 마지막 한 마디가 그의 평생을 살 수 있는 힘을 주었는데 마지막으로 열두 살 난 랠프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랠프야, 너에게 물려 줄 것이 한 가지도 없구나. 그러나 엄마의 말을 잊지 말아다오. 아무리 괴로워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알겠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잊지 마라.”

그 이후로 그는 로스앨젤레스에 사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그는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 힘겹게 공부를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인종차별과 가난의 어려움으로 수십 번 학교를 그만 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어머니가 최후로 남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버리지 말라는 유언을 떠올리며 극복하였습니다. 소아마비 장애까지 있었던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국제기구를 통해 세계 평화와 소수 민족의 인권을 위해 큰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가 어머니로부터 받은 유산은 모든 물질적인 것보다 훨씬 커다란 힘이었습니다. 그 힘으로 병들고 가난하고 천대받는 흑인이고, 게다가 어렸을 때 부모를 한꺼번에 여의는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던 에너지였습니다.

 

오늘 예수님도 랠프 번치의 어머니와 같은 힘을 주는 유언을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바로 12년간 하혈병을 앓던 여인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에서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그는 자신의 딸이 죽어가니 살려달라고 예수님께 청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당장과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러던 중에 당신의 몸에서 기적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시고 갑자기 서시더니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밀쳐대는데 누가 손을 대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 때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던 여자가 자신의 병이 고쳐진 것을 느끼고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립니다. 그 여자는 의사들에게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쏟아 붓고 갖은 고생만 하여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라고 생각하며 예수님께 희망하고 또 그것을 믿고 실행합니다.

그러자 병이 고쳐지고 예수님께 칭찬까지 받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믿음과 희망은 이렇게 하나입니다. 희망하기에 믿을 수 있고, 믿을 수 있기에 희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과 희망 속에서 사랑이 피어납니다.

정말 믿음과 희망을 걸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라면 조금만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금방 절망하여 자포자기하고 말 것입니다. 사실 죽음보다 무서운 것이 절망입니다. 그 이야기가 곧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회당장은 조금 전까지 가졌던 실낱같은 희망이 무너져 내립니다. 어쩌면 중간에 기적과 시간을 빼앗아 간 하혈병을 앓던 여인이 원망스러워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눈치 채신 예수님은 바로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재차 당부합니다. 왜냐하면 절망은 죽음보다 무섭지만, 희망은 죽음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당장의 집에 다다르니 역시나 곡하는 사람들이 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불고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는 죽지 않고 잠을 자고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비웃을 뿐입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믿음만 있으면 예수님께는 족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모두 내어 쫓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 제자 셋만을 데리고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십니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절망에 주저앉아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란 뜻입니다. 그러자 소녀는 곧바로 일어나 걸어 다닙니다. 다시 삶의 힘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복음사가는 소녀의 나이가 열두 살이었다고 덧붙입니다. 숫자 ‘12’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열두 사도, 열두 광주리 등을 보면 아시듯이 이스라엘에서는 완전한 숫자입니다. 즉, 하혈병을 앓는 여자와 이 소녀는 똑 같이 12년 동안 충분히 절망하며 살아왔던 것을 의미합니다.

12년은 이들이 인생의 의미를 포기하기에 충분하리만큼 절망적인 일만 있었던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희망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하혈병을 고친 여인은 자신의 희망과 믿음으로 스스로 주님께 다가올 줄 알았지만, 야이로의 딸은 이미 자신은 완전히 절망에 빠져서 일어설 힘이 없었는데 그의 부모의 희망과 믿음으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희망과 믿음은 정말 삶의 에너지를 하느님으로부터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혈병을 앓는 여인을 고쳐 줄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의 힘은 저절로 나갔습니다. 이는 원하기만 한다면 예수님은 얼마든지 우리에게 은총을 퍼부어 주실 준비가 되어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고 희망하지 못하여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끔 “건강하세요!”하고 할머니 등을 문질러주면, 할머니가, “어머나, 몇 달 동안 등이 뜨거웠었는데, 신부님의 건강하세요라는 말씀과 손으로 문질러주니까 금방 그 고통이 사라졌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더 문질러 달라고 손을 잡아끕니다. 저는 그 할머니가 아프셨는지도 몰랐습니다. 그 할머니는 저를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빼앗을 믿음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저의 본당 후배를 오랜만에 길에서 만났는데 다짜고짜 안수를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결혼했는데 몇 년 째 아기를 못 낳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안수를 해 주었더니 바로 임신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저도 신기합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해 주면서도 믿음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저의 믿음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으로 은총을 흡수해 버린 것입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바람은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불게 마련입니다.

어쨌건 믿음만 있다면 옷깃만 잡아도 아무도 못 고치는 병이 고쳐지는데, 하물며 그 분의 몸을 영해 그 분과 한 몸이 되는 우리들이야 믿음만 있으면 얼마나 큰 은총을 얻어 낼 수 있겠습니까?

 

또한 야이로의 예에서는 바로 주위에 있는 우리들의 믿음과 희망으로 다른 사람에게 은총을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고 완전히 죽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 확실하더라도 너무 늦은 것은 아닙니다. 정말 그를 사랑하여 하느님께 희망하고 믿는 사람만 있다면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통해 죽은 사람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한 가지 확실히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본인이 아니면 반드시 ‘누군가라도 믿고 희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것도 주실 수 없으십니다.

 

절망이라는 것, 당해보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매일 자살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만납니다. 그들에게 무어라 말해 주어야 할까요? 또 내일을 알 수 없는 우리 삶도 희망을 잃게 하는 일들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겨 둔 것이 희망인 것처럼 결코 그 분께 바라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분을 바라보고 희망하고 또 믿지 않으면 정말 매일 죽고 싶은 일들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을 바라보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옵니다.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오늘 복음이 정말 ‘복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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