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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 - 6.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07 조회수400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6.7 삼위일체 대축일                                    
신명4,32-34.39-40 로마8,14-17 마태28,16-20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살아계신 성부 하느님,
살아계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님, 살아계신 성령님이십니다.

살아계신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이십니다.
 
‘살아계신’ 말마디에 주목해야 합니다.
 
별난 하느님 체험이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자체가 바로 하느님 체험입니다.
 
6월 예수 성심 성월, 온 누리가 생명으로 충만합니다.
이 역시 하느님 체험입니다.

예나 이제나 똑같이 살아계신 하느님이십니다.
 
1독서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서의 바오로가, 복음의 예수님과 제자들이 체험한 하느님을
우리도 체험해야 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 있어 충만한 삶입니다.
 
우리 역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때 들어 높여져
품위 있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이십니다.
이미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안에 삼위일체 하느님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살아계신 성부 하느님을, 성자 예수님을, 성령을 체험할 수 있는
자질을 지니게 된 우리들입니다.

성령 안에서
성자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 하느님을 만나는 우리들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모두의 눈높이에 맞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자기를 활짝 개방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입니다.
 
하늘에 계신 초월자 하느님이요
온 누리에 충만한 성령님 하느님이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계신 성자 하느님이니
온 누리가 하느님으로 가득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누구나 간절히 찾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체험할 수 있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도록 해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성령 안에서 아빠, 아버지 하느님을 깨닫는,
또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이자 공동운명체임을 깨닫는 우리들입니다.
 
하여 우리가 성자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하느님 체험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언제나 이렇게 성령 안에서
성자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여 모든 기도문 말미에 꼭 삼위일체 하느님의 고백이 들어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공동체를 통해 체험하는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이십니다.

새삼 공동생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 모두가 한 개인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공동체를 향한 말씀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에게,
바오로는 믿는 형제들 공동체에게,
또 예수님은 제자들의 교회공동체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편 화답송 후렴,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역시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 주시는 주님의 축복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한 다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지키게 하여라.”

바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은 예수님에게서
제자들은 성자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이 명령에 순종했던 결과의 열매가
바로 교회공동체의 우리들입니다.
 
과연 주님께서 실천하라 명령한 것을 잘 지키고 있는 우리들인지요.

늘 우리의 주님의 체험을 잊지 않게 하고
또 새로운 주님 체험의 계기가 되게 하는 말씀 공부요 말씀의 실천입니다.
 
이런 말씀공부와 실천이 바탕이 됐을 때
끊임없이 새롭게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공부와 실천이 소홀히 할 때 마음은 무디어지고 굳어져
살아계신 주님의 체험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1독서의 모세 역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귀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오늘 내가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자리)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느님께는 영원한 ‘오늘’만 있을 뿐입니다.
 
그대로 ‘오늘’ 이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모세를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미사를 통해 체험하는 좋으신 하느님을 마음 깊이 새기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킬 것을 새롭게 다짐하는 미사시간입니다.
 
바로 이런 미사 은총이
주님께서 주시는 자리에서 평화롭게 오래 살도록 해 주십니다.


위로 하늘에만 계신 하느님이 아니라
땅에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신 성자 그리스도님이십니다.
 
성령 하느님 안에서
성부 하느님을 향해
성자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복된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분명한 약속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의 대미를 장식하는 복음의 진수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역시 고백성사 보속 시 제가 자주 주는 처방전의 말씀이기도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너희’의 복수입니다.
 
바로 교회 공동체의 믿는 이들과 늘 함께 하시겠다는
부활하신 주님의 철석같은 약속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신 임마누엘 예수님이십니다.
 
다 떠나도 마지막으로 함께 계실 분은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뿐입니다.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깨달을 때 구원이요
천하무적의 삶에 아쉬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부자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때로 삶이 절망스럽고 외롭고 쓸쓸한 것은
바로 이런 주님을 찾아 만나라는 신호입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런 주님을 만날 때
절망은 희망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불안은 평화로,
죽음의 어둠은 생명의 빛으로 바뀝니다.
 
바로 이런 주님을 만나는 은총의 미사시간입니다.


오늘은 자랑스러운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각자의 눈높이와 수준, 취향에 맞게,
 성부 사랑의 하느님으로,
성자 은총의 하느님으로,
 성령 친교의 하느님으로 자신을 활짝 개방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셋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셋이니 얼마나 깊은 관계의 공동체 하느님이신지 깨닫게 됩니다.
 
 
이런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과의 일치가 깊어질수록
우리 교회공동체의 일치도 깊어집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 모두
성령 안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복된 시간입니다.
 
주님이 주신 참 좋은 기도인 성호경과 영광송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하며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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