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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1101 - 모든 성인 대축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01 조회수1,201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7
11 01 () 가해 모든 성인 대축일 복음 묵상

Solemnity of All Saints


요한 묵시록 7,2-4.9-14
요한 1 3,1-3
마태오복음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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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 요한 묵시록 7,2-4.9-14

나 요한은 2 다른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3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9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11
그러자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2 말하였습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13
그때에 원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Reading 1


Rv 7:2-4, 9-14 

I, John, saw another angel come up from the East, holding the seal of the living God.
He cried out in a loud voice to the four angels who were given power to damage the land and the sea, "Do not damage the land or the sea or the trees until we put the seal on the foreheads of the servants of our God."
I heard the number of those who had been marked with the seal, one hundred and forty-four thousand marked from every tribe of the children of Israel.

After this I had a vision of a great multitude, which no one could count, from every nation, race, people, and tongue.
They stood before the throne and before the Lamb, wearing white robes and holding palm branches in their hands.
They cried out in a loud voice:

"Salvation comes from our God, who is seated on the throne, and from the Lamb."

All the angels stood around the throne and around the elders and the four living creatures.
They prostrated themselves before the throne, worshiped God, and exclaimed:

"Amen. Blessing and glory, wisdom and thanksgiving, honor, power, and might be to our God forever and ever. Amen."

Then one of the elders spoke up and said to me, "Who are these wearing white robes, and where did they come from?"
I said to him, "My lord, you are the one who knows."
He said to me, "These are the ones who have survived the time of great distress; they have washed their robes and made them white in the Blood of the La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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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독서


▥ 요한 1 3,1-3

사랑하는 여러분,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Reading 2


1 Jn 3:1-3

Beloved:
See what love the Father has bestowed on us that we may be called the children of God.
Yet so we are.
The reason the world does not know us is that it did not know him.
Beloved, we are God's children now; what we shall be has not yet been revealed.
We do know that when it is revealed we shall be like him, for we shall see him as he is.
Everyone who has this hope based on him makes himself pure, as he is p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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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복음 5,1-12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Gospel


Mt 5:1-12a

When Jesus saw the crowds, he went up the mountain, and after he had sat down, his disciples came to him.
He began to teach them, saying: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Blessed are they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land.
Blessed are they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will be satisfied.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
Blessed are the clean of heart, for they will see God.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children of God.
Blessed are they who are persecuted for the sake of righteousness,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Blessed are you when they insult you and persecute you and utter every kind of evil against you falsely because of me.
Rejoice and be glad, for your reward will be great in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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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11 01일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을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을 뜻합니다. 겸손하기에 오로지 주님께만 의지하게 되지요.
우리는 살아가며 엄청난 슬픔을 겪습니다. 이런 고통을 통해서 오히려 삶의 깊은 면을 통찰하고 주님의 참뜻을 깨우치기도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권리보다 의무를 앞세우며 복수마저 주님께 맡깁니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주님을 절실하게 찾으며, 주님 뜻에 따라 의로운 일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사랑을 나눕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마음이 올바르고 일하는 동기가 순수한 사람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나름대로 순교의 길이 요구되지 않습니까? 신앙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도 많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시련의 길을 걸으면서도 주님과 일치되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며 성인들의 모습을 닮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성인이라 하여 모두가 하느님 계명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수한 것도 아닙니다.
뒤늦게 회개하기도 하고, 하루하루 삶에서 가난한 마음을 지니고, 고통을 통해 주님의 뜻을 새롭게 깨우치면서 주님을 절실하게 찾은 분들입니다. 자신을 단련해 가면서 하느님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더 닮아 가려고 노력한 분들이지요. 우리도 이런 삶을 살 때 성인들처럼 하느님과 일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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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 11 01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우리 신앙인 모두의 공통된 바람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거룩함’은 본디 ‘다른 분’, ‘따로 떼어 놓은’, ‘구분 지어진’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태초에는 하느님께만 쓰인 칭호였습니다. ,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초월적인 상태, 그래서 우리가 삶 안에서 감히 참여하기 어려운 경외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에서 주 하느님께서는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라고 하시며 인류를 당신의 거룩함에 초대해 주셨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도 여타의 민족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려 노력했습니다.
우리 인류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거룩함은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는 사랑입니다. , 거룩함은 계명을 준수하거나 외적으로 정화된 모습을 갖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인들은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려 노력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이 거룩함이야말로 참된 행복의 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참행복도 세상이 추구하는 부와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슬퍼하고 박해를 받을 때도 있지만, 이를 통해 오히려 하느님을 만나고, 위로를 받는 사람들 안에 존재합니다.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또한 나의 삶과 생명을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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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1 01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천사의 인장을 받은 하느님의 종 십사만 사천 명! 시한부 종말론과 연관된 사이비 종파들은 구원받을 수 있는 숫자를 십사만 사천 명으로 못 박고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 숫자는 상징적입니다. 십사만 사천 명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만 이천 명씩 나온 숫자로서, 완전하게 가득 채워진 숫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그다음에 이어지는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와 가까운 의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성인들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가 성인들의 수를 수천 명, 수만 명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어린양의 피로 깨끗해져서 천국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이들, 하느님께서 사랑을 베푸시어 당신 자녀로 삼아 주신 이들은 그리스도를 닮아 순결하게 되어 언젠가 그분처럼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하늘 나라를 그리워하면서 정의와 자비와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의 갈망도 언젠가 채워져, 하늘 나라가 바로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니, 이런 분들의 숫자가 십사만 사천 명뿐이겠습니까!
“성인들은 인간이었고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이 성인이 되셨다면 나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한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의 고백대로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나도 성인이 될 수 있고 또한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어떻게 살면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성인은 맡은 일에 열중하며 주어지는 모든 일을 거절하지 않는다. 성인에게는 주어지는 모든 것이 선행의 좋은 기회가 될 뿐이다”(루이 라벨). 성인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거절하지 않는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인데, 아마도 이렇게 하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하느님 나라의 기쁨은 영원하니, 눈을 들어 하늘 바라보기를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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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 11 01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프랑스의 문학 평론가 피에르 바야르의 『나를 고백한다』라는 매우 인상적인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스 같은 불의한 권력 집단에 저항한 의로운 사람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묻습니다.
그가 각별히 주목하는 이들 중에는 나치스를 비판하다가 사형된, 뮌헨 대학교의 학생 셋도 있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는 내밀한 느낌’이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보여 준 그들의 모습에 대한 증언을 인용합니다. “기소 당한 세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아주 바른 자세로, 침착하고 고독하게 앉아 있었다. 그들은 솔직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한 아이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번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말하고 쓴 것은 사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거예요. 단지 그들은 감히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죠.’”
저자는, 혼자가 아니라는 그들의 확신에 찬 감정이 단지 동시대인들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훗날 역사 안에서 그들의 행위가 옳다는 것을 확인해 줄 이들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현재의 폭력과 불의의 권력에서 자유로운 보편적인 정의와 인간성의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그들이 고립감을 이겨 내고 꿋꿋이 올바른 일을 행할 수 있었던 데는 그들의 가톨릭 신앙 또한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에 우리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생각합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 안에서 현세와 내세, 지상과 천국을 포괄한 영원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단지 죽은 뒤의 삶을 위한 ‘영적 구원’에만 관련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인들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여기서 구체적으로 선과 정의와 애덕을 위해 투쟁하고 헌신하는 삶을 이끄는 원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이는 결코 외롭지 않으며,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는 ‘이미’ 성인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걷는 주님의 길에 ‘모든 성인’이 있기에 외롭지 않다는 것을 기뻐하면서, 성인들이 감지하고 의지했던 진리의 빛을 굳건히 따르도록 결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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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 11 01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오늘 복음은 이른바 ‘진복팔단’(眞福八端)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에서 행복에 이르는 여덟 가지 기준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 기준에 가장 충실하게 살았던 분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셨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그분께서는 머리를 기대실 곳조차 없으셨습니다(마태 8,20 참조). 또한 그분께서는 슬퍼하셨습니다. 라자로의 죽음을 보시면서, 또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한 11,35; 루카 19,41 참조). 또한 예수님께서는 온유하시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말없이 수난을 받아들이셨고,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시어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9,28 참조).
예수님께서 자비로우시고 마음이 깨끗하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복음서 곳곳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 또한 평화를 이루시고자 유다인들에게 박해를 당하신 것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요컨대, 진복팔단에서 제시하신 행복의 길을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실천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러셀’이라는 등산 용어가 있습니다. 겨울 산행에는 누군가 먼저 눈을 다지며 길을 내야 하는데, 깊이 쌓인 눈 위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며 길을 터 주는 힘든 작업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러셀의 역할을 하신 예수님과 그 길을 따라 산 성인들을 기억하며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을 멈추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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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 11 01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맹자의 제자인 공손추(公孫丑)가 스승에게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聖人)이십니다.” 하고 말하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성인이라는 말은 공자께서도 자신에게 당치 않다고 하셨다.” 이처럼 성인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성인 가운데 교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겸손과 반대되는 교만은 자신의 능력이나 재주를 자랑하며 남을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인생의 큰 병폐 가운데 하나가 교만입니다. 그렇다면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아(無我)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잊고,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비우는 자세입니다. 자신을 비우는 사람은 가진 것이 없으니 내세울 것도 없고, 내세울 것이 없으니 겸손하게 됩니다.
‘아빌라의 성녀’로 널리 알려진 예수의 성녀 데레사 수녀는 하느님만으로 아쉬울 것 없고 하느님만을 행복으로 여기며 살았던 분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엇에도 네 마음 설레지 말라. 그 무엇도 무서워하지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고 하느님만이 가시지 않으니 인내함으로써 모두를 얻으리라. 하느님을 모시는 이는 아쉬울 것 없으니 하느님 한 분이시면 흐뭇할 따름이니라.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하느님만을 믿고 그분께 위로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곧 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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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 11 01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아이들을 참 풍요롭고 밝게 키워 낸 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남편을 잃고 혼자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할 정도로 가난하였지만, 아이들은 매우 밝았으며 그늘진 구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공공 버스를 탈 때마다 “이건 우리 차야.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를 위해서 마련해 주신 거란다.” 하고 말했고, 산과 들과 하늘을 바라보면서는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셨단다. 우리는 얼마나 부자인지 모른단다.”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비록 물질적으로 빈곤했지만 늘 신앙 안에서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면서, 아이들에게 척박한 세상에서도 늘 선한 의지를 갖도록 해 주고 세상을 풍요롭게 바라보도록 했습니다. 물질적 소유가 최고 가치가 된 이 시대에 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어머니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정이 결핍을 가지고 있지만 어머니가 하느님 안에서 믿음과 희망을 심어 준 이런 아이들은, 세상의 어떤 풍파가 닥쳐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빈곤 속에서도 마음만은 풍요롭게 살 줄 알고, 반대로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가난한 마음을 가질 줄 알 것입니다. 삶의 깊은 곳에 흐르는 인간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늘 깨닫고 살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생존 양식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지요. 그는 재산이나 지식,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추구하며 자기 소유에 전념하는 ‘소유 중심’의 삶과, 나눔과 베풂을 삶의 가치로 여기며 기쁨을 추구하는 ‘존재 중심’의 삶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소유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은 소유 자체가 자신의 존재가 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까 늘 두려워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이해관계로 보기 때문에 방어적이며 가혹해지고 결국 스스로 외로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존재 중심’의 삶은 베푸는 삶, 더불어 사는 삶, 봉사하는 삶, 곧 너와 나 모든 존재를 하나로 만듭니다. 참된 행복은 자기가 가진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느님 것으로 바라보며 함께 누리고 나누는 데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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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1 01)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고, 그 행복이 참된 것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희망하는 행복의 내용은 열이면 열 모두가 다릅니다.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꿈이 참된 행복이고, 어떤 사람이 제대로 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오늘 모인 사람들에게 ‘참행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아홉 가지의 선언은 참행복과 하느님 나라를 얻을 수 있는 대헌장입니다. 이 대헌장은 사람의 삶의 태도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참행복은 공짜로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삶을 살 때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행복은 구체적으로 주님을 닮는 삶을 살아야 가능합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자비를 베풀며, 의롭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 때문에 박해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쁘고 떳떳하게 주님의 종으로 살 때 비로소 주님께서 마련하신 참행복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밖의 행복에 대한 꿈은 모두 허상이고, 환상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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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1 01)


마음의 가난과 슬픔 자체가 행복은 아닙니다.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일 뿐입니다. 그런 상황에 놓인 이들은 쉽게 마음을 엽니다. 조금만 잡아끌어도 하느님을 찾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이끄심을 만납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누구나 행복한 것이지요. 행복의 조건은 주님께서 ‘함께하시는지’, ‘함께하지 않으시는지’에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기에 주님께서 찾아 주십니다. 슬픔에 잠겨 있기에 위로해 주십니다. 주님의 방문과 위안을 깨닫는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겪는 ‘사건과 만남’ 속에는 그렇게 주님의 개입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음이 가난하고 슬픈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셔야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소유가 많아지면 주님을 외면하려 듭니다. 본인도 모르는 새 ‘자만의 유혹’에 빠져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늘 부족한 마음을 안고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많은 교우들은 고통을 만나면 ‘화살 기도’를 바칩니다. 화살처럼 빨리 가기를 원하는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렇게 오시기를 청하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누구나 행복해집니다. 어떤 처지, 어떤 상황에 있든 기쁨이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슬프더라도, 짜증과 원한에 잠겨 있다면 주님의 힘은 오시지 않습니다. 행복할 리 없습니다. 행복은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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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1 01)


다섯 살 소녀가 병으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병은 소녀의 여덟 살 난 오빠가 얼마 전에 걸렸다 나은 병이었습니다. 소녀가 살 수 있는 길은 항체가 생긴 오빠의 피를 수혈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의사는 오빠를 불러다 말했습니다. “네 피를 수혈해야만 동생을 살릴 수 있단다. 네 피를 동생한테 줄 수 있겠니?” 그러자 소년의 눈에 겁이 서렸습니다. 잠시 망설이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네, 선생님. 그렇게 하겠어요.
수혈이 끝나고 한 시간 뒤, 소년은 머뭇거리며 물었습니다. “저, 선생님. 저는 언제 죽게 되나요?” 그제야 의사는 소년을 사로잡았던 순간적 두려움을 이해하였습니다. 소년은 자기 피를 줌으로써 동생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행복은 본시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이 내려 주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격을 갖추었을 때 주어집니다. 아니, 여건을 갖춘 사람이라면 어느 틈에 곁에 와 있는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복음 말씀은 행복으로 가는 조건들입니다. 하느님 때문에 베풀고 희생하고 포기하라는 말씀입니다. 우선은 슬픔과 박해이더라도 결국은 행복으로 인도된다는 말씀입니다. 참행복은 가족 안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가정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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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1 01)


오늘 복음은 행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행복에 대한 기준입니다.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부족함을 느끼는 데 행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해 왔던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넉넉하고 넘쳐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음의 가난을 행복의 첫째 조건으로 꼽으십니다
단순하게 마음을 비우라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채우라는 것일까요? 가난한 사람의 대칭은 부자입니다. 재물을 많이 소유한 사람입니다. 재물이 넘쳐야 부자 소리를 듣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저절로 행복해질까요? 아닙니다. 엄청난 재산가이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먼 듯이 사는 이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가난은 소유 앞에서 절제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한 행동을 실천할 때 행복해진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십니다. 은총도, 주님의 힘도 인정하지 않는 이에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가난은 지식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소유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행동입니다. 이 일을 어찌 쉬운 일이라 하겠습니까?

행복은 시각에서 출발합니다.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에서 시작됩니다. 행복은 물질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을 소유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음의 가난에 담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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