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연과 필연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26 조회수878 추천수20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12주간 토요일 - 우연과 필연

 

 

 

어제는 한 수녀님으로부터 밥을 다 얻어먹었습니다.

한 달 전에 제가 아는 한 수녀님을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처음 뵙는 다른 한 수녀님과 함께 오셨습니다. 그 날 오신 수녀님은 로마에 처음 오셨고 한 달 정도 피정을 하다가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고 각자의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 분들은 더운데도 육개장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저희 식탁이 먼저 끝나서 나가면서 저는 그 수녀님들의 식사 값까지 지불해 드리고 나갔습니다. 이것은 로마에서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사제는 돈이 넉넉하지는 않아도 크게 부족하지도 않지만 수녀님들은 식당에 오고 싶어도 큰맘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 사정을 아는 신부님들은 식당에서 몰래 수녀님들의 밥값을 내고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입니다.

그 수녀님들은 나중에 돈을 내려고 할 때서야 이미 계산 되어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메일로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셨고 언젠가 그 수녀님께서 꼭 식사를 사드리고 싶다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피정을 하기 위해서 오신 수녀님은 빚지고는 못사는 성질이라 반드시 밥을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런 기회가 있을까?’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맘대로 하시라고 했습니다.

그 수녀님께서 한 달간의 피정을 마치시고 어제가 떠나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신부를 만나기 위해 2시가 넘어서야 같은 식당에 갔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손님이 아무도 없었는데 그 때 마침 그 두 수녀님이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저희는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해서 피정 다녀오신 그 수녀님이 우리 식사 값을 내셨습니다. 그 수녀님이 처음 오시자마자 저를 만났었고 또 가시기 마지막 날에 같은 식당에서 저를 만나서 한 달 된 원수(?)를 갚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고 하면서 사제되어서는 처음으로 수녀님께서 식사 값을 내시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어찌 보면 좀 특별한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는 우연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섭리 없이 일어나는 일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아기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관찰하고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잘 보살펴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머리카락 숫자도 다 알고계시는 하느님은 우리 모든 순간에 당신의 섭리하심으로 관여하십니다.

따라서 길가에 피어 있는 잡초도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도 즐겁게 지저귀는 새소리도 우연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제가 수녀님을 처음과 끝에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 하느님께서 섭리해 주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저의 개인적인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저 ‘특별한 우연’에 불과한 것입니다.

믿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세상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도,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도, 세상에 일어나는 설명할 수 없는 일조차도 다 우연의 일치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는 날이 맑은 것도 비가 오는 것도 필연입니다. 하물며 두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한 사람이 사제가 되고 수녀가 되고 그 사람들이 서로 우연찮게 만나는 것이 어찌 그저 우연이겠습니까? 불가에서는 그래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가봅니다.

저도 어렸을 때 본당 수녀님이 별것도 아닌 일에 ‘어머~ 주님께 감사~’라는 말을 되풀이할 때는 좀 오버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불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 수녀님은 하느님의 섭리를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카파르나움에서 백인대장의 하인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으로 가시려고 하자 백인대장은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에 매우 놀라서 이스라엘에서는 누구에게도 그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고 칭찬해 주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직접 가셔서 고쳐주시려고 하시는 이유는 그것을 보아야 사람들이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에 나오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실 때는 직접 손으로 잡아 일으켜주시며 고쳐주십니다. 생각만으로도 모든 것을 고치실 수 있으신 분이 이런 기적의 표징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사람은 보아야만 믿으려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백인대장의 하인이 그렇게 치유되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하인이 나은 것과 예수님께서 나으리라고 하신 시간이 일치하는 이유는 매우 ‘특별한 우연’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에게는 아주 작은 사건도 필연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신학교 들어오자마자 입학 피정을 하면서 성소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자서전을 쓰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주 자세하게 자신의 첫 기억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를 쓰는 것입니다.

저는 26살에 신학교에 들어가서 주님께서 좀 늦게 불러주셨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쓰면서 태어나면서부터 저를 불러주시지 않은 순간이 없다는 것을 소름끼칠 정도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주님의 섭리는 우리가 사는 순간순간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느끼느냐 느끼지 못하느냐는 우리의 믿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매 순간 주님의 섭리하심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끊임없이 기도하라.’의 출발점일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