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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83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26 조회수413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4

1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2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병 환자가 자신의 몸이 깨끗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도 살다보면 무수히 많은 서원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도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신이 있으며 이렇게 신이 많은 이유는 우리의 갖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각각의 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떤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을 들어줄 신을 찾아서 간청해야 합니다. 유일신 신앙은 신을 선택해야 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으므로 우리는 아주 현명한 선택을 한 사람들입니다.

치유 기적에는 오늘 복음처럼 병든 이가 자신의 병을 치유해 주기를 먼저 청하는 경우도 있으며 병든 이를 보시고 측은하여 병을 치유한 경우가 있습니다. 병든 이를 보면 무조건 치유해 주는 것이 옳은 일이므로 오늘처럼 병을 치유해 주기를 부탁을 해야만 치료를 해 주는 것은 복음서를 처음 대할 때는 이 점이 좀 의아했습니다.

오늘 복음처럼 병든 이가 자신의 병을 치유해 주기를 먼저 청하는 것은 산상 설교에서 알려주신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마태 7,7)는 말씀이 진실 됨을 알려주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예수님이 병든 이를 보고  치유해 주는 경우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태 7.12)하신 황금률을 실천하신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환자는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치료하기 위해서 그동안 엄청난 노력을 하였지만 모두가 허사였을 것입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몸을 깨끗이 치유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며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속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제가 드린 청이 합당한 것인지, 부당한 것인지를 주님이 판단하시여 합당하면 들어주십사 하는 그런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육이 깨끗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육이 더 피폐해 지도록 기도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의 사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더 피폐하게 만들 뿐이므로 이런 기도를 한다면 예수님은, 하느님은 절대로 들어주실 리 만무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내 자식을 대학에, 회사에 합격시켜 달라고 청을 하는 것은 남의 자식은 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이며, 남편이 승진하도록 청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은 승진시켜 주지 말라고 기도하는 것이며, 내를 부자로 만들어 달라고 청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은 그만큼 가난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하느님이 들어주신다고 믿고 있다면 그 사람은 공정하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잡신을 믿고 있거나 하느님을 무당으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기도는 내로 인해서 그만큼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당하는 경우이므로 공정하신 하느님은 이런 청은 절대 들어줄리 만무합니다. 설사 다른 사람에게는 피해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경우에는 즉, 절제된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이 무조건 건강만을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것, 온갖 못된 짓은 다하는 사람이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 의사의 지시는 따르지 않으면서 건강이 회복되기만을 기도하는 것처럼 노력은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그런 기도는 공정하신 하느님은 절대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나병 환자의 청을 무조건 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 이런 모든 것을 판단하시여 결정하셨다는 의미에서 "내가 하고자 하니" 하셨습니다. 잘못된 기도로 하느님의 결정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여전히 이런 기도를 할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하며 기도생활에 충실하고 있다고 또는 자신의 신앙이 돈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오늘 복음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성이면 언제나 감천이 아니며 기도라고 다 같은 기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감천이니 기도니 하는 이런 언어의 함정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신 말씀은 지금까지 노력한 네 노력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기도만으로 몸이 깨끗하게 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므로 잘못된 기도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소문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부 교회에서는 신앙 간증이니 뭐니 하며 하느님께, 예수님께 기도하였더니 기도발이 먹혀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등 이런 소문을 내지 못해서 안달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게 과연 종교라 할 수 있는지 분간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신 말씀은 잘못 알고 있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제들인 너희들은 내 영혼을 깨끗이 치료하지 못하였지만 참 하느님은 내 영혼을 깨끗이 치료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려주라는 뜻으로 묵상하고 있으며 내 영혼을 깨끗이 치료해 주신 하느님께, 매사를 하느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라고 다 똑같은 하느님이 아니므로 제대로 된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런 의미로 오늘 복음을 묵상하였지만 과연 오늘 복음이 이런 의미로 쓰여졌을까 하는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므로 전지전능하여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목적으로 기록하였고 실제로 오늘 복음과 같은 기적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양산되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경전은 누가 읽어도 그 뜻이 명확하여 오독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어느 특정인들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또 범부들은 수십 번을 읽어보고 숱한 묵상을 통하여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는 보편적인 경전이 아니라 이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경전이고 일반 대중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오독하여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으며 또 이를 누군가가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비단 제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기를 바라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오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기도는 언제나 바른 기도를 하고
그런 기도만이 하느님이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은유적 표현인지 사실적 표현인지 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언제까지 이런 미몽 속에서 살아야 합니까?
이런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깨우침의 성령님을 보내주시옵기를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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