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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고자 하시면 하실 수 있습니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26 조회수950 추천수16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12주간 금요일 - “하고자 하시면 하실 수 있습니다.”

 

 

 

미국의 “룩”이라는 잡지에 실려서 화제가 되었던 실화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일입니다.

미국 병사 네 명이 차를 타고 정글 속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길이 너무 좁아서 힘들게 전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베트콩의 기습을 받았습니다. 병사들은 황급히 차에서 뛰어내려 정글에 몸을 숨겼습니다. 사격이 주춤해 진 사이를 틈타 상황을 보았습니다.

앞에는 베트콩 군들이 몰려오고 있었고 차를 돌리자니 길이 너무 좁아 그렇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뛰어서 도망치면 금방 잡힐 것 같아서 네 명의 군인은 본인들이 직접 차를 들어 돌리자고 하였습니다.

하나, 둘, 셋! 하고 각자 바퀴 하나씩을 잡고 들으니 차가 들렸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차를 공중에서 한 바퀴 돌려 방향을 바꾸어 그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부대에 돌아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그들 넷은 시험 삼아 다시 차를 들어보려 했습니다. 하나, 둘, 셋! 그러나 차는 단 1밀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아이가 차에 깔렸을 때 엄마가 차를 번쩍 들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인간의 에너지는 어디까지 발휘될 수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인간 안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능력이 잠재해 있는지도 모릅니다.

 

강하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집트를 정복하고 한 곳에 서서 ‘이 곳에 나의 이름을 딴 도시가 세워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신하들은 일사천리로 도시 계획을 세우고 알렉산드리아라는 굉장한 도시를 세웠습니다. 원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힘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워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용서를 하려고 해도 그것조차 잘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삶에서 체험합니다. 그 때마다 우리의 무력함을 느낍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무력감은 이 외에도 너무 많이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단점을 고쳐보려고 부단히도 애를 씁니다. 그러나 고쳐지지 않자 곧 자포자기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난 천성이 이래요! 난 성격이 이런 유형이라 절대 그렇게 바뀔 수 없대요.”

 

할 수 없다, 이것은 어쩌면 진정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원하니 큰 도시가 하나 세워졌던 것처럼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에게도 사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알렉산더 대왕과 비교도 안 되는 굉장한 힘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물론 전능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원하는 것’과 ‘하실 수 있는 것’이 일치하는 유일한 존재이십니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전능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원하다' (want to)와 '할 수 있다' (can) 는 동사는 예수님께 같은 의미로 적용됩니다.

“주님!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졌다면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이 능력을 우리도 지니고 있어야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처럼 무력해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이유는 하느님의 도움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한 인간으로서 당신의 모든 능력을 아버지로부터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청을 들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은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고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제 청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도 죽은 이를 살리는 권능을 아버지께 청해서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능력대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도 하느님께 그 능력을 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는 하느님과의 단절과 성령의 은혜를 거부하게 함으로써 우리 안의 능력을 감소시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청은 안 들어 주시지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 뜻을 실행하는 사람의 청은 들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요한 9,31)

 

따라서 저는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고, 혹은 자신의 단점을 고칠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기를 원치 않아서 그래요!”

그러면 그들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말은 저를 두 번 죽이는 거예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단 말이에요.”

“진정으로 원하면 불가능은 없어요. 왜냐하면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이에요.”

먼저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죄로 인하여 하느님과의 단절로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해서임을 알아야합니다.

만약 진정으로 원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의 죄를 씻어주고 성령의 권능을 가득 넣어주실 것입니다. 좋은 뜻을 품으면 당연히 하느님도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을 ‘진정으로 원하면’ 하느님은 그 사람 안에서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십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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