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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 포도주에 취했군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14 조회수644 추천수4 반대(0) 신고
 

 

새 포도주에 취했군 - 윤경재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9-17)

 

  교회의 봉사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불만 아닌 불만, 어려움 아닌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들 입에서 늘 예수님 말씀과 성령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니까 주변 사람들이 부담스럽게 쳐다본다는 것입니다. 입만 열면 봉사하는 중에 교우들이 어떻게 변했다든지, 어떤 체험을 들었는데 감동적이었다는 등 이런 주제로 대화를 이끄니 부담스럽다는 눈치라는 것이죠. 특히 요새 이러 저러한 어려운 일이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주님의 가르침이더라, 주님께서 예비하신 것이었다는 말을 꺼내면 더욱 싸늘해지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회 친구들이랑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의 말을 경청해주고 장단을 맞추어 주는 교우나 봉사자들 하고만 사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생각이 들까 곰곰이 묵상해 봅니다. 혹 잘못된 것은 아닌지 살피게 됩니다. 여러 교우님도 이런 경험이 있었을 줄 압니다.

  사도행전 2,13절에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비아냥거림을 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새 포도주에 취했군.”하며 비웃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성령강림 때에 사도들이 영적 황홀감에 빠져 여러 나라 말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도들은 최소한 16개 언어로 그들이 이해하는 언어로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난장판 같았을 것입니다. 성령의 새 포도주에 취했던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일어나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오순절 설교를 합니다. 아침부터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취한 것이라고 말하며 그간에 벌어진 주님의 일을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청중이 보인 첫 반응은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였다.’ 입니다. 우리가 짐작했던 거와는 약간 다릅니다. 또 그날 회개하고 세례 받아 늘어난 새 신자가 삼천 명이었다고 기록합니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복음과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비전을 열어줍니다. 우리의 기쁨은 그것을 보고 느끼는 외교인들에게 비아냥거림과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아픔은 조만간 변하여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성령강림의 은사는 우리에게 내린 기쁨을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성령의 도움으로 외교인들이 이해하는 언어로 표현할 때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순수한 사랑을 담아 줍니다. 사랑은 인간적 이기심이나 사심, 부끄러움이나 명예욕을 없애야 들어옵니다. 서로 친구라는 믿음을 주어야 마음을 열 것입니다. 너와 내가 똑같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동류의식과 평화를 바라는 간절함과 진실함을 표현할 때 상대방은 사랑을 느껴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변하게 된 사랑의 뿌리가 어디서 근원하는지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도 아픔처럼 다가오는 변화의 징조를 살펴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갈망은 흔히 생각하듯 외적 성공이나 흥미에 매어 있지 않습니다. 내적이고 깊은 체험의 갈망을 누구나 지니고 있습니다. 아릿하게 저며 오는 본연의 슬픔과 기쁨을 맛보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 아픔과 기쁨의 원천이 예수께 비롯하며 인간을 가두었던 일상의 한계와 구조를 순간적으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복음의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새 포도주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켜 줄 것이라고 가리켜보여야 하겠습니다.

  주인과 종은 강요된 관계입니다. 종은 주인이 행하는 깊은 마음과 의미를 모릅니다. 그래서 속으로는 언제나 불만과 불안이 싹트고 있습니다. 그러나 벗은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줍니다. 예수님과 제자인 우리가 친구가 되듯이 우리 서로는 벗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품위를 지켜주는 벗은 아픔과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입니다. 그럴 때라야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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