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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54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13 조회수422 추천수5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부활 제5주일 수요일]

오늘 복음은 이번 주일 복음과 동일한 복음이 선정되었습니다. 불과 3일 만에 또다시 묵상하여야 하므로 주일 묵상에서 미처 묵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 또는 미흡한 부분이 있는지를 확인하였으나 오늘 새롭게 묵상한다 하여도 그날의 묵상보다 더 좋은 묵상은 하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과 동일한 부활 제5주일 묵상 글은 말미에 펌해 두겠습니다)

왜 이렇게 복음을 중복 선정하고 있는지, 그리고 특히 성모성월인 5월 복음을 묵상하며 느낀 점은 우리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복음이 선정되고 있으므로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각 나라의 교회는 복음 선정권이 없으며 로마 교황청에서 선정한 복음을 그대로 따라야 하므로 오늘은 이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 두려고 합니다.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노동자 성인이신 성 요셉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여 매일 미사와 함께 두 대의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이 날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노동절이므로 바티칸 교황청에서 이를 감안하여 두 대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하여 우리 교회는 '근로자의 날'에 적합한 성 요셉과 관련된 복음을 봉독하는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날은 어린이와는 전혀 관계없는 복음이 선정되었으며 어버이날 역시 우리 부모님을 공경하는 복음과는 전혀 관계없는 복음을 봉독하고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어린이날에는 어린이와 관계되는 복음을 봉독하고, 미래 세대를 책임질 어린이의 중요성에 대하여, 또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하신 말씀 등을 인용하며 강론을 하셔야 강론 말씀이 살아있는 강론이 될 수 있으며 저희 묵상도 어린이와 관련된 묵상을 하여야 이날을 더 뜻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어버이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며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8,27)이런 말씀을 봉독하지 못하고 그날 선정된 복음과 관련된 말씀을 강론하고 우리는 이를 묵상한다면 이는 우리 교회가 우리 현실을 너무 도외시한 것입니다. 또 그날 복음과 다른 주제로 강론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복음 선정은 바티칸 교황청에서 선정하여 전 세계가 동일한 복음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복음이 선정되고 있습니다. 이를 시정하려면 각 국의 경축일과 기념일에 맞는 복음이 선정되어야 하므로 각 나라 교회에 복음을 선정할 수 있는 선정권을 돌려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도 무리한 요구라면 최소한의 범위에서 복음 선정을 교체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해야 합니다.

이를 방치할 경우에 예상되는 문제점은, 만약에 우리나라에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온 국민이 슬픔에 젖어 있는데 우리 교회만 하느님을 찬미하는 성경을 독서하고 복음을 봉독한다면 미사에 참례한 우리는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이렇게되면 우리 교회는 사회로 부터 지탄을 받아야 합니다. 이럴 때에는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 재난을 극복하는 용기를 심어주고 희망을 잃지 않는 복음이 선정되어야 하고 이를 강론하고 묵상하여야합니다.

이번 금요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이날 복음도 '스승의 날'과는 전혀 다른 복음이 선정되어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에서 전 세계가 동일한 복음을 봉독하게 한 이유는 아마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하신 이 말씀에서 '마음을 모아'에 근거를 둔 것으로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서로 화해하여 한 마음이 되라는 말씀이며 모두가 똑같은 복음으로 미사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결론은 어린이날에는 어린이와 관련된 복음을, 어버이날에는 어른을 공경하는 복음을, 스승의날에는 스승과 관련된 복음을 봉독하고 이에 대한 강론 말씀을 듣고 이에 대한 묵상을 하자는 것입니다.

오늘은 묵상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글 한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 글을 마칩니다. 먹지 못해서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도와주고 재난 봉사 활동 등을 많이 하고 계신 탤런트 김 혜자 여사의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내 자신이 종교인이면서 나는 가끔 종교라는 것이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종교든 다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일으킨 것이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종교나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내세도 천국도 이념도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런 것들이 다 싫습니다. 그냥 순수한 인간과 동물과 꽃나무들만 존재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서로 싸우지 않을 테니까요.

지난 1백 년 동안 지구상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날은 불과 2주뿐이라고 합니다. 그 수많은 전쟁들 중에 종교가 원인인 것이 10분의 1이라 해도 전 세계 종교인들이 참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원인인 것이 10분의 9를 넘어도 또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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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입니다.[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늘 알려주신 말씀은 아버지는 농부이시고 당신은 참포도나무이고 제자들은 가지라 하였습니다. 참포도나무와 가지는 일체일 수밖에 없으므로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요한 10, 30) 하셨으며 예수님과 우리는 또 일체이므로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는 모두가 하나라는 등식이 성립됩니다. 이는 동일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수의 원천이며 예수님은 그 생명수의 우물이며 우리가 그 우물 물을 먹고 살아간다면 영원한 생명수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그 우물인 예수님 그리고 그 우물 물을 먹는 저희는 '영원한 생명수'의 관계 속에 있으므로 하나의 관계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우물 물을 먹지 않고 야곱의 우물을 먹는 자는 누구나 목 마를 것이므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우물 물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며, “그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고 '사마리안의 여인과 대화'(요한 4,13-14)에서 이미 알려 준 내용을 오늘은 표현을 달리하여 제자들에게 다시 상기시켜 준 말씀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수의 우물 물인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성체로 영하고 있으나 성체를 영하는 것은 곧 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말씀을 모시는 것이므로 이렇게 사고의 전환을 한다면 미사에 참례하여 강론을 경청한 모든 사람들은 이미 말씀을 모셨으므로 말씀을 상징하는 성체를 차별 없이 모두가 모셔야 더 합리적일 수 있으며 예수님은 이를 더 반기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이신 참포도나무는 가지가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하여 자신의 지체인 가지를 스스로 잘라내어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 가지를 잘라내는 것은 포도나무를 관리하는 하느님이신 농부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접할 때마다 생각나는 복음은 '무화과나무의 저주' (마르 12, 12-14; 마태 21,18-19)입니다. 예수님이 시장하시여 무화과나무를 발견하고 무화과나무로 가셨으나 아직 철이 아니어서 열매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철이 아니어서 열매가 열리지 않은 무화과나무에게 저주를 보내어 말라죽게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이 바라는대로 되지 않으면 응징과 심판으로 상징되는 구약의 정서가 그대로 남아있는 초기 신앙인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으므로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춰야 할까요?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같은 공관복음서인 루카복음서에서는 이 내용을 아예 빼 버렸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오늘 복음인 참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과 우리는 한그루의 참포도나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므로 우리 그리스도교 사상이 한 단계 더 발전되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모든 복음서를 우리는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니 '무화과나무의 저주'를 중시하는 신앙관도 있으며 오늘 복음인 '참포도나무의 비유'를 중시하는 신앙도 있습니다. 전자는 응징을 수반하는 지배 중심의 사고로, 후자는 공존을 중시하는 상생의 사고로 발전할 것입니다. 또 전자는 중세 우리 그리스도교의 신앙관이며 후자는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이성적 신앙관입니다.

지금 우리 신앙은 이런 두 모습이 양존하는 과도기적 상태에 있으므로 사실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교리대로 복음을 그대로 강론하신 신부님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요즘은 육신의 부활로 강론하지 않고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강론하십니다. 이는 중세 같으면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교회의 장상부터 이런 의미로 강론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육신의 부활을 믿는 중세 교리를 그대로 믿어야 하는 자기모순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자기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진리의 가르침을 전해 줄 수 있을지, 우리 교회는 이제 이런 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에는 또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은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이러한 분명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은 생각하지 않고 기도만 열심히 하면 우리의 청을 들어 줄 것으로 믿고 지금도 열심히 기도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일부 교회에서는 이렇게 알려주고 있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이 말씀은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머물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무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단 한 가지, 예수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게 하여 이를 실천하는 일 밖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고 기도하면 무조건 다 들어준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실천한 후에 부자 되게 하여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여도 예수님은 그런 기도는 절대 들어 주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자 되게 하여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그 자체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시인하는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외의 기도는 아빠 하느님이 절대로 우리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좋은 인연을 많이 쌓아서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선인선과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며 주님의 성체를 모시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참포도나무이시고 저희는 그 지체입니다.
그 지체인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참포도나무가 됩니다.
하나가 되지 못한 지체는 농부이신 하느님이 알아서 처리할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일을 인간들이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올바르게 깨우쳐 주시고
하느님의 생명수인 예수님의 우물 물을 먹고 자라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저희 모두가 좋은 인연으로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는 언제나 저희를 생명의 우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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