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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반가운 손님이 친구가 되다
작성자박영미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13 조회수590 추천수16 반대(0) 신고

금요일 오후에 노크하는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글쎄, 생김새는 분명 미국인인데 고개를 숙이며 조금은 어눌하게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한국말로 인사를 하고서는 수줍은 모습으로 딸기 한 팩을 건네주는 모습에 깜짝 놀라 제 눈이 휘둥그레 해졌습니다.

이곳은 미국인데 미국에서 한국말로 인사를 받다니...게다가 알지도 못하는 낯선 미국인으로부터 말입니다.

놀라움과 반가움에 다짜고짜 누구시냐고 급하게 물어보는 제게 자신의 이름은 '로라'이고 옆집 할머니의 딸이라고 했습니다. 원래는 시애틀에 있는 사설 아카데미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서울과 울산에 있는 큰 회사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왔다고 했어요. 지난 주 수요일에 어머니 뵈러 이 곳에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옆집 할머니께서 작년 가을 어느 날 한국에서 딸이 달력을 보내 왔다고 책상에 얹어 놓는 달력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어느 한의원 광고용으로 제작된 달력이었는데 닥종이 인형으로 만들어진 귀여운 모습의 사람으로 달마다 한국의 전통을 표현한 사진과 한의학에 대한 조그만 지식이 실려 있었지요. 그 달력이 로라가 한국에서 보내 준 달력이었던 거예요.

아이들과도 인사를 하고 자신이 어떻게 한국과 연관이 있는 지 간단히 얘기를 나누고 월요일 오전에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로라가 아침마다 저희 집에 왔어요. 아침 일찍 미사를 다녀 온 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지만 로라와 함께 오전 시간을 보내니 글을 쓸 시간을 따로 내지 못해 못했어요. 지금은 로라가 돌아 가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오늘도 미사와 일상을 통해 하느님께서 제게 주시는 말씀과 하느님 당신만을 생각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반가운 내 조국의 최근 소식과 함께 찾아 온 로라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번개같이 지나가 버렸어요.

로라는 그동안 직업 때문에 머물고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한국과 한국 사람에 대해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었어요. 로라가 경험을 통해 배운 한국 사람과 한국 문화 그리고 제가 이곳에서 살며 배운 미국 사람과 미국의 문화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너무 통하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통해 친구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래 알던 사람도 아니고 단지 세 번 만나고도 이렇게 잘 통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둘 다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을 벗어나 다른 문화와 다른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하게 되었는지를 경험과 노력을 통해 알게 되니 다르다고 놀라지 않고 또 다르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서로에게 유익한 대화를 나눌뿐이었습니다.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니 너무 좋았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지만 이 곳에 이사온 후로 2년이 지났지만 로라와 같이 마음이 잘 통하고 잘 맞는 외국인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어요. 물론 제가 적극적으로 노력을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요.

다른 나라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저는 저의 몸에 밴 한국의 문화와 새로이 배운 문화가 갈등이 없이 어우러져 가도록 부단히 노력을 합니다. 한국적인 사고 방식을 과감히 버려야할 때도 있고 새로운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야할 때도 있습니다. 언어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과 문화에 관심을 갖고 알기 위해 부단히 애를 씁니다.

로라와 같이 한국을 잘 이해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니 너무나 좋았습니다. 가까이 살아서 언제든 궁금할 때마다 질문을 던지고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내일 다시 시애틀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가을학기에는 연세대학교에서 가르칠 예정이고요.

로라가 좋아하는 김치 두 쪽과 김을 챙겨 주며 큰 포옹을 하였습니다. 이메일로 연락을 하자는 약속도 하였습니다.  시애틀을 방문하면 언제든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언어만 통한다고 모두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자세로 받아들이는 사람, 그 다름 속에서 장점을 보며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서로를 진정으로 이롭게 하는 진실된 친구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단순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고 그래서 상대의 장점을 알아 보고 배우고자 하는 것이 제가 최고의 가치로 두는 좋은 친구입니다. 사흘 동안 로라를 만나고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친구가 됨에 또 하느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마음을 먼저 오픈해 주어 서로를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을 갖게 해주고 또 저를 친구라고 불러준 로라에게도 고맙고요.

우리 모두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계심을 안다는 공통된 분모가 있으니 이미 친구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곳의 문화를 알기 위해 혹은 로라가 한국의 문화를 알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느님을 알아가기 위해 각자 더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나름의 색깔과 개성으로 느낀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묵상을 통해 혹은 열심한 지식을 통해, 또 다른 사람은 신앙의 눈으로 바라 보는 자신의 삶의 체험을 통해, 문화와 역사를 통해, 정말 무궁 무진하게 하느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것을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누다 보면 아마도 우리 각자 안에서 활동하시는 다양성의 하느님을 만나고 그 다양성 안에서 하나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했어도 저는 이 곳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이 저의 친구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매일 매일 마음을 열고 하느님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친구가 많으니 너무 행복하고 마음이 부유합니다. 늘 든든합니다. 로라처럼 당신도 기꺼이 저의 친구가 되어 주실 수 있지요? 하느님 안에 진실로 잘 살아가기를 격려하고 서로 사랑하는 친구 말이예요.

오늘도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 주신 이곳의 모든 친구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친구야~ 오늘도 주님 안에 행복한 날 되어라. 하느님 주시는 평화를 품고 자유로운 날개짓으로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라.


(pictured by 배봉균 요아킴 친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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