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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풍요와 물질 문명
작성자김열우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12 조회수432 추천수2 반대(0) 신고

얼마 전,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문제로 한반도에 위기감이 고조되었을 때, 피난을 생각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렵게 장만한 주택이나 살림 도구들이 일시에 잿더미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모처럼 장만한 T.V가 그 중 걸렸습니다.

종전에 보던 T.V에 비하여 얼마나 선명하고 크게, 시원하게 보이던지, 현실감이 생동하여 한동안 T.V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여행프로를 보며, 해외 여행에 대한 갈망을 한결 덜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도무지 그 T.V를 두고 피난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롯의 아내가 타버리는 자신의 재물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뒤를 돌아 보고 말아,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어리석고 딱한 여인이라고 지탄하던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역시, 그 어리석은 여인의 하나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에 고소를 금치 못하였습니다.

이처럼 물질 문명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강함을 새삼 발견하였습니다.

 

만인이 흠모, 찬탄하는 풍요와 물질문명-

현대는 가히 그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왕도, 세종대왕도 누리지 못하였던 풍요와 첨단 문명의 혜택을 현대인들은 모두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날,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물질들-

영원히 타거나 썩지 않고 변하는 일이 없어 천국까지 동행하여 자신을 증언하여 준다는 선행-

그러나 사람들은 영원하고 신실한 친구 선행보다, 순간 타버리고 말, 물질을 위하여 얼마나 많이 투자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일까요?

 

천하보다 소중한 영혼은 날로 쇠퇴하여 온 사방에서 탄식합니다.

에사오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넘기듯, 지극히 보잘 것 없는 물질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영혼을 아주 헐값에 팔아 넘기기 때문입니다.

이웃 나라에서 어린 소녀들이 휴대폰 하나를 사기 위하여 원조교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보다 어리석은 짓이 또 있을지,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발전하는 물질 문명과 나란히, 이처럼 한심한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리고, 헐벗고, 추워서가 아닌, 현대의 물질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구비하기 위하여서 라는 이유가 더욱 우리를 무참하게 만듭니다.

 

풍요와 물질 문명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그 목적에 부합되어야 할 것이건만, 이처럼 사람의 영혼을 파멸시키는 도구로 전락하는 반작용이 있습니다.

 

물질의 풍요는 사람은 물론, 하느님도 몰라보는 안하무인을 만듭니다.

올바른 인식이나, 감각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교만이라는 중병에 걸려 사망의 길로 이끌어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합니다.

인류 패망의 이유가 주인 되신 창조주 하느님보다 자신을 앞세우기 위한 교만 때문이었다면, 교만보다 중병은 없습니다.

스스로 부요하다, 자부하나, 실상은 자신을 두른 부가 눈을 가려 바로 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수렁에 빠뜨립니다.

그러므로 부와 물질문명은 패망의 길로 이끄는 선봉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최고로 꼽는 인기있는 것들의 함정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고,

만일 한 눈이 실족하게 하면, 과감히 빼어내고, 남은 한 눈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은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를 해롭게 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적은 것을 소유하였을지라도, 심지어 죽음에 직면한다 하여도, 하느님의 인정을 받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길을 걷는 것이 진정 부요한 삶입니다.

그 삶은 하늘의 평화와 기쁨을 소유하며, 천사의 수종을 받고, 매일 떠오르는 태양과, 자연이 끼치는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 삶에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함께 할 것입니다.

풍요도, 물질 문명도, 자신을 살리고 유복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될 때, 진정 복이 될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지키며, 영생을 위하여 무엇을 더 하여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의구심을 품어왔던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가 내리리라 가 그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결코 그가 쌓은 부로는 천하보다 귀한 자신의 영혼을 구할 수 없고, 모두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데에 구원이 있다 는 말씀입니다.

바닷물이 마시면 마실 수록 갈증을 더하듯, 부는 쌓을 수록 모자라 합니다.

 

자신의 마음과 목숨, 뜻을 물질에 둘 때, 버림을 받습니다.

선악과처럼, 물질은 우리의 마음과 목숨, 뜻을 빼앗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현대의 부나, 찬란하고 신비한 물질 문명은 자신의 영혼마저 헐 값에 넘겨도 좋을 만큼 느끼도록 유혹하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쌓아올리는 물질들-

언젠가 부질없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선행-

자신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방편이 됩니다.

 

일시적이나마, 선행을 다짐하였던 위기의 시대가 지나자, 또 다시 예전으로 돌아와 버리고 마는 자신의 속절없음에-

또다시 자신과의 고투를 다짐하며..

2009년 5월 12일 오후 5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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