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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나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07 조회수471 추천수5 반대(0) 신고
 
 

내가 나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윤경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요한13,16-20)

 

  예수님께서 뽑으신 제자 중에 이스카리옷 유다가 주님을 배반한 사건은 제자들에게 두고두고 묵상거리가 되었고, 외교인들에게는 좋은 공격거리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분께서 어쩌면 그렇게 깜박 속을 수 있느냐는 지적입니다. 이에 제자들도 상당히 혼란을 겪었나 봅니다. 그러나 주님 부활을 체험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제자들의 생각은 두 가지로 정리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고 주님께서 거론하셨다는 것과 비단 유다의 그런 배반사건이 꼭 없었어도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십자가 상 들어 올림 사건은 일어날 것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유다 배반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해두는 이유는 그런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도 “내가 나”라는 사실에는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두기 위함이라고 제자들은 알아들은 것입니다. 하필 유다의 배반사건이 벌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 사건이 예수님의 영광에 보탬이 되었으면 되었지 하등의 수치나 부끄러운 사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몇 년 전에 유다복음서라는 이름의 고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사전에 유다에게 대사제 일당에게 예수님을 고발하도록 언질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너는 그들 모두를 능가할 것이다. 너는 인간의 형상을 빌려 이 땅에 온 나를 희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다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예수가 ‘육신을 벗어야 부활할 수 있음’을 유일하게 인식한 수제자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또 이 책은 유다의 배반이 없었다면 인간들의 구원을 이루려는 하느님의 계획도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 유다의 배반을 합리화하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유다 복음서는 주님부활 대목이 없는데, 그 이유는 예수가 영지주의자들이 악한 것으로 여기던 육신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영생을 얻었기에 굳이 무덤에서 되살아나 승천하는 과정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또 전례 자체와 사제들의 제사행위 자체, 마침내 성찬례가 불필요하다는 반 성사주의(Anti-Sacramentalism)적인 입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 유다복음서가 영지주의 문헌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예수의 부활이 결국 소수의 지혜를 갖춘 사람에게만 효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전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구원의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일회적 사건으로 여타 지혜를 얻은 사람들에게 첫 번째 본보기 역할만 하였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니 굳이 미사 전례와 성체 성사가 다시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 저자는 이런 영지주의의 폐해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유다의 배반사건은 예수님 영광에 필요불가결한 전제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그저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모두 받아주시는 주님을 그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죄의 경향성과 사악함을 있는 그대로 그림으로써 제자 된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또 그 안에서 무한히 인내하시고 참아주시며 용서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엊그제 어린이날이 지났습니다. 어느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식에게 편안한 환경만을 물려 주려하는 것은 그 아이가 자라서 되돌아볼 행복과 지혜를 빼앗는 일 밖에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이런 ‘지혜와 행복’을 주시고자 인생의 수고로움과 아픔을 겪도록 마련하십니다. 심지어 당신의 외 아드님에게까지 그런 과정을 겪으시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야 하겠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자신을 내세우는 유다와 같은 인물이 될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을 “내가 나”라고 말씀하시는 분으로 믿을 것인지 그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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