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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49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07 조회수411 추천수5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부활 제4주간 목요일]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은 사도들에게 종이 되라 하셨습니다. 일전에 평화TV에서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모 신부님께서는, 불교에서는 신도들을 부처님의 아들로 격상시켜서 佛子라 하고, 개신교에서는 聖徒라고 하는데 우리 가톨릭에서는 信者 즉, '믿는 놈'이라고 하고 있으므로 누가 교무금을 많이 내겠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하시며,
 
불자들은 자신들을 최상으로 격상시켜 주므로 사찰도 회사하고, 개신교는 성도로 높여주므로 십일조를 착실히 납부하는데 우리는 ‘믿는 놈’이라고 하고 있으므로 교무금도 조금만 납부한다고 하였습니다. 제 생각은 호칭 바꾸는 것은 돈 드는 일도 아니므로 信者 대신에 天子라고 부르면 기분이 한층 더 Up될 것 같습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보다 공복이 더 높으므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일본인 관광객도 시위 군중으로 잡아가서 구타를 하여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으므로 시민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不問可知입니다.
 
우리 역사를 보더라도 地主보다는 마름의 횡포가 심하여 소작인을 더 힘들게 하였으며, 요즘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실천하지 않고 군림하며 권세를 부리고 있으므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까지 씻어 주시며 사도들에게 특별하게 당부하신 이런 가르침을 지켜나가는 것이 진정한 사도 계승일 것입니다. 사도의 사명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려주고 이를 그대로 실천하여 민중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성경을 접할 수 없으므로 그분들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민중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일부 종교인의 행실을 보며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사석에서 모 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스님이 골프를 치면 얘기 거리가 되고 신부나 목사들이 골프를 치는 것은 얘기 거리도 못 된다고 하시며 같은 종교인임에도 왜 이렇게 차별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얘기를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불교는 수행을 중시하는 종교인데 스님들이 수행은 하지 않고 골프나 치고 있으므로 아직은 얘기 거리가 되고, 일반인들은 신부님과 목사들을 굳이 구분하지 않으므로 일부 잘못된 목사들 때문에 아예 기대를 접어서 탓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실제가 이렇다면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하신 말씀이 무색하기만 합니다. 참고로 우리 교회의 사도 계승은 이 말씀을 주요 근거로 삼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베드로 사도로 부터 계승되었기에 동방 교회, 성공회, 개신교에 대하여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책임도 다 하여야 하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성 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미사에서 재연하고 있으나 예수님이 바라셨던 것은 우리 교회가 당신처럼 가장 낮은 자세로, 우리 사회의 종이 되라는 뜻에서 우리는 감히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큰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밖에는 없습니다. 영업사원처럼 길거리에서 어깨띠를 두르고 전단지를 나눠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파트 벨을 누르며 다닐 수도 없고, 길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하였다가는 역 효과만 생기므로 우리의 삶이, 우리의 사랑이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 주위 사람에게 감동을 줘야 합니다.
 
故 김수환의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신 이후에 그 분의 삶에 감동을 받아서 많은 분들이 입교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하신 말씀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입교한 것도 신부님께 감동을 받아서 입교를 결심하게 되었으므로 제 자신이 이 말씀을 증명하는 증인이기도 합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이 그것도 몰랐느냐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용서하러 오신 예수님이므로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겠지만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의아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 복음을 전파할 당시에도 이 문제에 대하여는 해결해야 할 과제처럼 생각됩니다.
 
그 해결책으로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시편 41.10)하는 성경 말씀을 예수님이 직접 인용하시며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으나 생략된 시편의 그 뒤 말씀을 보면 '저를 일으키시어 제가 그들에게 앙갚음 하오리다' 이렇게 소망하는 기도의 일부이므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면 예수님이 앙갚음까지 해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배반의 역사입니다. 유다의 배반을 성경 말씀을 증명하기 위해서 배반하였다고 설명하는 것은, 예수님은 이처럼 성경에 기록되어 오시기로 정해진 분으로 설명하는 것은 당시의 지적 수준에서는 능히 통할 수 있지만 지금의 입장에서는 요한복음서의 기자가 오버한 느낌입니다.
 
유다의 배반은 역사적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지금의 잘못된 여러 모습들에 의해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오로지 아빠 하느님의 뜻만을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시자 사도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그대로 이어가라 하시며
사도들의 모습에서 당신의 뜻과 아빠 하느님의 뜻을
저희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특별히 당부하셨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 교회의 사도 계승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직자 분들께서는 이런 목자의 전통에 오점이 되지 않도록,
참된 목자가 되시어 앞장서 저희를 이끌고 낮은 곳으로 나아가도록
지혜의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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