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48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06 조회수427 추천수5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4-50

그때에 44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45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4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48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49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50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

우리는 완전하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만을 믿어야 하며 다른 어떤 것을 믿는 것은 모두 우상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하느님의 뜻과 다르다면 예수님의 말씀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는 예수라는 우상을 믿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화되어 이 땅에 오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귀로 직접 들을 수 없으므로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이제는 모두가 공유하므로 과거처럼 어느 누가 독점할 수도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기록하였으므로 기자의 생각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기록하였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 성경의 원본은 현재 존재하지 않고 필사본만 존재하므로 필사과정에서 필사자의 생각을 기록하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실제 예수님의 말씀인가를 확인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제 나름대로 확인하는 방법은 말씀을 실천함에 있어서 자기희생과 자비가 있어야 실천가능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하였습니다. 촛불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빛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여 가며 어둠을 밝게 하고 있습니다. 또 북극성처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은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에 방향을 잃지 않도록 저희의 길을 인도하고 태양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를 결코 심판하지 않으며 저희를 지켜주고만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빛의 삶을 살아야 함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예수님을 믿는 삶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나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되면 남을 정죄하거나 심판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삶은 도움을 주려고만 할 뿐 결코 남을 심판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교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많은 심판을 자행해 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가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여 저는 우리 신앙에 충실하기 위해서도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만을 믿고 따를 생각입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심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심판하는 것은 우리의 양심이고 말씀이 우리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그 것이 바로 심판입니다. 살인을 하여 지명수배 중에 있는 자가 은신처에서 형사에게 체포되자 형사에게 한 첫 마디는 "왜, 이제 왔느냐" 하였다고 합니다.

말씀은 곧 하느님입니다. 우리 속에는 하느님의 영성이 있기 때문에 그 영성이 우리를 끊임없이 심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심판받기 위해서도 영성을 매일매일 키워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남을 심판하려는 것은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게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척도는 말씀을 많이 숙지하는 것도 아니며, 교리적 지식이 많고 적음도 아니며 자기희생을 통하여 말씀을 얼마만큼 내 삶 속에서 실천하느냐에 있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자기희생을 해야 함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희생양을 우상에게 바치는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자기희생의 올바른 믿음으로 하느님을 섬겨야 함을 새롭게 알려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착한 목자이시기에 당신의 양들이 더 이상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당신이 대신하여 희생양이 되셨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예루살렘의 성전은 크고 높고 화려하였지만 예수님의 성전은 그런 성전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비천한 곳에 있었습니다. 당신의 성전이 있는 가장 낮은 곳으로, 비천한 곳으로 저희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며 홀로 외롭게 계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저희는 그 빛으로 이 땅에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하지만 그 빛은 함지 속에 갇혀서 이 땅의 등불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함지를 걷어내어 이 땅을 밝게 비추는 구원의 등불이 되도록
저희와 저희 교회를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