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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착한 목자의 영성" - 5.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03 조회수493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5.3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사도4,8-12 1요한3,1-2 요한10,11-18

                                                    
 
 
 
 
"착한 목자의 영성"
 


어제 월 피정 중 형제들과 오늘의 복음을 나누면서
어느 형제의 언급에 새삼 공감했습니다.

“우리 요셉수도원은 하나의 착한 목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집을 방문하여
  편안히 머물렀다 감사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으로 떠나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라는 요지의 말이었고 즉시 저도 화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도원은 그대로 착한 목자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수사님들은 주방에서, 농장에서, 안내실에서
  그리고 각자의 소임지에서 착한 목자의 영성으로 살아갑니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 요셉수도원의 주인은 착한 목자 예수님이시고,
수도원을 찾는 모든 이들은 결국 착한 목자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착한 목자 예수님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라면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하고 아름답겠는지요.
 
교회 안팎의 모든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모든 공동체의 성원들이 착한 목자의 영성으로 살아간다면
참으로 이상적인 사회일 것입니다.


우리의 착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이 착한목자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을 닮을수록
우리 역시 착한 목자 영성으로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착한 목자인가 삯꾼 목자인가 당장 식별됩니다.
 
예수님을 닮은 착한 목자는
양들인 형제들을 위한 큰 사랑으로
목숨까지 내놓지만
삯꾼 목자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버리고 달아납니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인 형제들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가정이나 교회에서,
또는 수도원에서 시간과 정력 등 모든 사랑을 나누며
책임감을 지니고 착한 목자로서 살고 있는 지요,
혹은 무책임하게 관심 없이
이기적으로 잇속 만 챙기며 삯꾼으로 살고 있는 지요?
 
우리의 착한목자 예수님은
평생 자기를 내놓는 삶을 사셨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셨습니다.

이런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내 놓는 사랑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헌신적 사랑을 사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이런 아버지와의 사랑에서 나온 예수님의 확신은
그대로 우리의 확신이 됩니다.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렇게 예수님처럼 자발적 사랑으로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
아무도 다치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집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은 예수님을 부활시켜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셨듯이
이런 이들을 역시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며 헌신적 사랑의 삶을 살다가
행여나 버림받았다 느낄 때
예수님의 이 처지를 묵상하시며 위로와 힘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느님은 반드시 당신 집 모퉁이의 머릿돌로 쓰십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과의 끊임없는 친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착한 목자 주님과의 관계가
우리 인생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착한 목자의 영성으로 살고 싶습니까?
 
착한 목자 예수님과의 사랑을 깊게 하십시오.
다 사라져도 마지막 남는 것은 주님과의 이 사랑과 믿음의 관계뿐입니다.

저절로 목숨을 내놓은 착한 목자의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착한 목자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고스란히 체험한 예수님이셨기에
착한 목자로서 평생 당신 백성을 위해 목숨 내놓은 사랑이 가능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 있어야
착한 목자의 영성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머리의 지성으로 아는 게 아니라
가슴의 사랑으로 아는 하느님이요 예수님이요 사람입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알게 되니 사랑과 앎은 함께 갑니다.
 
하느님을, 예수님을, 사람을 알 수 있는 길은 사랑뿐입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십니다.
 
과연 여러분은 착한 목자 예수님을 얼마나 아십니까?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평생 공부는 착한 목자 예수님 사랑공부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알수록
착한 목자 예수님의 영성으로 살 수 있습니다. 착
 
한 목자 예수님 사랑공부는 그대로 아버지 사랑공부에 직결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유일한 열쇠는 예수님뿐입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 사랑의 정점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한 요한 사도의 감격에 벅찬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과의 사랑이 깊어질 때
저절로 깨달아지는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자각입니다.
 
이어 점차 착한 목자를 닮아가고 있는 자신에 대한 확신도 들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착한 목자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복된 운명이요, 정체성입니다.
 
우리의 참 나는 예수 그리스도요,
우리 전 인생의 조각의 목표도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마지막 우리 인생 조각이 완성될 때
바로 우리의 그 모습은 착한 목자 예수님의 모습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의 영성을 사는 사람들,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게토 집단이 아닙니다.
 
종파를 초월해 온 인류 가족을 품에 안은 착한 목자 예수님처럼
넓은 가슴으로 모두를 품에 안고 살아가는
착한 목자 예수님 영성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떼가 될 것이다.”

억지로가 아닌 사랑의 삶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착한 목자 예수님께 인도하는 선교가 참으로 절실한 시대입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의 영성을 사는 삶 자체보다
더 좋은 선교도 없을 것입니다.


아주 예전 어느 장상의 충고를 잊지 못합니다.

“장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목자로 생각하게.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없듯이
  종신 서원한 형제들을 내 보낼 수는 없네.
  이게 바로 목자의 마음이라네.”

비단 공동체의 지도자들뿐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바
착한 목자 예수님의 영성입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부활하신 착한 목자 예수님은
당신 생명의 말씀과 사랑의 성체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어
당신을 닮은 작은 착한 목자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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