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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45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03 조회수465 추천수5 반대(0) 신고

오늘의 복음입니다. [부활 제4주일]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작년 여름에 몽골 초원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인솔자는 모 대학의 정치학 교수로 그 교수님은 평화를 최고 가치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전공은 아주 생소한 ‘平和學’이라 하였습니다. 그 여행에 주저 없이 합류하였던 것은 양 떼들이 푸른 초원에서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착한 목자다" 하신 오늘 말씀의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하지만 그렇게 평화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드넓은 초원에서 양들이 무리를 지어 평화스럽게 지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원하셨던 세상은,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저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속에 이리 한 마리가 있어 저 양들을 잡아먹는다면 양들의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화스러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바로 이 모습이 에덴동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 양들은 에덴동산에서 저처럼 평화스럽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인간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아니 우리 스스로가 이리가 되어 에덴동산의 평화를 깨뜨렸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고향을 더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희귀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고향은 우리가 처음 살았던 에덴동산입니다. 우리는 그 에덴동산을 늘 그리워하고 있으므로 그곳에서 우리 모두가 저 양들처럼 평화스럽게 사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에덴동산을 향하여 각자가 길을 찾아서 떠나지만 난파선에서 살 길을 찾아 우왕좌왕하는 생쥐의 신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구현하고자 하셨던 '하느님의 나라'가 바로 에덴동산이며 예수님은 우리 인류를 에덴동산으로 인도하는 길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를 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리로부터 저희를 보호하는 목자가 되시고자 하셨습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이 이리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목숨을 내놓고 양들을 보호할 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이리를 쫒아내기 위해서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지만 삯꾼은 양들을 학대하기 위해서 지팡이를 가지고 다닙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삯꾼들이 착한 목자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양들에게 좋은 풀을 먹이기는커녕 좋은 풀을 먹으려는 양들을 좋은 풀밭으로 가지 못하도록 오히려 지팡이로 방해하고 있습니다. 또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처럼 착한 목자는 언제나 삯꾼들에게 배척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착한 목자가 누구고 삯꾼이 누군가를 이제는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를 분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하였습니다. 목숨을 내놓는 것은 자기의 전부를 내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당신의 살과 피를 저희들에게 나눠주시는 분이 참된 목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이 위탁한 권한을 마치 자기 것처럼 착각하여 권한을 남용하는 자들이 자칭 지도자들이며 목자들입니다. 자기의 권한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지도자가 바로 이시대의 착한 목자임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대의 착한 목자를 만나지 못한 것은 착한 목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착한 목자를 알아 볼 안목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양들은 나를 안다."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착한 양들이 되어야 착한 목자를 알아 볼 수 있지만 우리 자신부터가 착한 양이 아니기 때문에 착한 목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도 바로 착한 양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착한 양이 되면 구원은 당연한 결과이므로 구원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주행 비행기에 탑승하면 제주도를 가기 싫어도 제주도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은 바로 이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고는 공존과 상생의 사고가 아니라 배척과 패자(覇者)의 사고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거나 굴복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종교가 다르면 배척하고, 보수와 진보로 편을 갈라서 배척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우파니 좌파니 하며 한심한 짓들을 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이 분단된 것도 서럽고 서러운 일인데 하나가 되려고 하지 않고 서로 배척만 하고 있습니다. 천지가 同根이고 만물이 일체임에도 이를 모르고 나와 다르다고 생각되면 매사를 배척의 논리로, 패자의 논리로 이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은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이는 아빠 하느님이 예수님께 하신 명령이며 예수님이 오늘 저희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를 서원하며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기도하시며 저희에게 ‘평화의 기도’를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렇듯 매사에 내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나를 죽이지 않고는 자비도, 사랑도, 용서도 모두 구호에 불과하여 에덴동산도 하느님의 나라도 결코 기대할 수 없으므로 이를 반성하며 오늘 주님의 성체를 모시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저희를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시는 착한 목자였습니다.
하지만 착한 목자는 삯꾼들의 손에 의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아직도 착한 목자와 삯꾼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착한 목자와 삯꾼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이 열려서 착한 목자의 양이 되어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저희 모두가 에덴동산에서 살 수 있도록
지혜의 성령님을 보내 주시여 저희를 깨우쳐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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