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의 참 의미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16 조회수890 추천수9 반대(0) 신고
 
 

부활의 참 의미 - 윤경재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35-48)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첫 번째 행동은 제자들에게 찾아오시어 가운데 서시고 평화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그동안 깨닫지 못한 성경 말씀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십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인간이 죽으면 혼과 육신으로 갈라져 육신은 땅으로 혼은 하늘로 흩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그리스 시대 사람들은 육신은 썩어 없어지더라도 혼의 불멸을 믿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종교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활이란 개념을 혼의 귀환쯤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흔히 생각하듯 혼의 귀환뿐만 아니라 육신의 부활도 포함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음식을 잡수시기도 하며 우리 손으로 직접 만질 수도 있는 육체를 지니셨다고 썼습니다. 어디든지 다니시며 홀연히 나타나셨다가 또 모습을 감추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새로운 존재 양식이 있다는 말입니다.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사건인 예수님의 부활은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 진행형인 사건입니다.

  지금도 ‘예수는 신화다.’라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아예 이런 이름의 책까지 나왔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예수님 이전 오래전에 이집트 이리시스 신화나 그리스 디오니소스 신화가 부활을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미 BC 6세기경 바빌론 왕국 시대에 생긴 이원론적 조로아스터교도 부활을 언급하였고 바빌론 유배 시절에 유대인들이 이 신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신의 아들이 죽었다가 재탄생한다는 신화가 이미 있었는데 예수의 제자들이 그 신화를 빌어 예수 부활을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태양의 솟음과 달의 변화를 비유로 들어 사람도 윤회하듯이 죽음과 부활을 반복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영지주의로 모여들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초기 공동체 시기부터 지금까지 모습을 바꾸어가며 계속 등장했습니다. 초기 교회 교부들은 이 영지주의에 대항하고자 무던히 애쓰셨습니다. 공의회를 개최하며 이들 주장의 허구성을 반박했고 우리 신앙의 본질을 밝혔습니다. 이 결과 삼위일체 교리가 채택되었고 성모 마리아께서 천주의 모친이시라고 고백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고백하지 않으면 참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이런 영지주의자들의 오해는 모두 예수님 수난과 부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온전한 인간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성부의 뜻을 따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자 강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도 혼의 회귀가 아니라 육신과 영을 지닌 분으로서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잘 몰랐던 존재양식으로 영원히 사시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여전히 인간의 이성으로 예수님을 재단하려들고 있습니다. 선신과 악신의 이원론적 주장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신과 피조물 사이의 중간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라는 진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제자들이 예수님 부활의 참 의미를 몰랐다고 아주 솔직하게 적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만큼 인간의 이성이 부족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영지주의적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확연하게 보여주십니다.

  먼저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라는 구절이 부활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루카 22장27절의 말씀인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약속과 일치하는 구절입니다. 수난 전에 하신 말씀과 부활 이후에 하신 말씀이 일치하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생전의 예수와 부활하신 분이 동일한 분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 말씀도 부활하신 분이 동일한 분이시며 그동안 제자들이 알던 부활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선포하십니다. 여기서 나오는 샬롬은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와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샬롬은 전쟁과 불화가 없는 상태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닙니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적극적 의미이며 상태가 아니라 동작입니다. 멈춤이 아니라 성장입니다. 매순간 하느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맺는 올바른 관계입니다.

  샬롬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셔야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모르는 현대판 영지주의자들은 지금도 유럽에서 버스 안 광고판에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다. 인간 이성의 힘으로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인본주의자들 모임’이라는 문구를 게재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런지.......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들에게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길이 바로 지름길이겠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