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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31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16 조회수456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부활 팔일 축제내 목요일]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35-48

그 무렵 35 예수님의 제자들은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상중 하나는 평화사상입니다. 평화 없이는 하느님의 나라는 결코 도래할 수 없습니다. 평화는 내 자신의 평화는 물론 내 가정의 평화, 우리 이웃의 평화, 나라의 평화, 세계의 평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서구사회에 평화의 개념이 최초로 도입된 것은 우리 초기 그리스도교에 의해서 도입되었습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이런 평화사상 때문에 징집을 거부하여 박해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으며, 우리 그리스도교의 일부 종파에서 징집을 거부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국가 유지와 정의를 위한 전쟁 등은 용인되었으며 정의의 이름으로 우리 그리스도교가 일으킨 전쟁이 십자군 전쟁입니다. 절대가치를 포기하고 얻은 대가로 세계 종교로 급성장을 하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희생을 더 치를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어제 복음을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어제 복음은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재해석하여 성경 말씀대로 철저하게 사셨습니다. 성경 말씀에 충실하기 위해서 고난을 겪고 부활의 영광으로 성경 말씀을 증명하였습니다. 공생활의 모든 삶은 성경 말씀을 실천하며 성경 말씀을 증명하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이런 삶을 사셨기에 '나는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 하였습니다. 신약에서는 성경(구약)은 예수님이 오심을 증거하는 것으로 인용하고 있지만 어제와 오늘 말씀은 이와 반대되는 말씀으로 오히려 성경 말씀대로 살아서 성경 말씀이 진실 됨을 부활로 증명하신 것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성경 말씀대로 살면 부활을 확신하셨기에 요한복음서에 의하면 십자가에서 마지막 하신 말씀은 '다 이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되살아나셨음을 증명하였으므로 '다 이루어졌다'를 확인하는 뜻에서 "다 이루어져야 한다.”를 다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하신 이 말씀에서, '나에 관하여'에서 '나'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묵상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미를 예수님으로 묵상하면 경전을 묵상하는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나'는 바로 '우리 자신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살면 성경은 바로 내 자신에 관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본받기 위해서 그분을 믿고 따르는 종교적 자세와 경전을 묵상하는 자세는 달라야 합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내 자신이어야 우리는 그 소설에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할 것입니다.

 우리의 성경해석은 교회의 해석과 다른, 각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모두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이 해석하였다면 지금의 예수님은 계시지 않았을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파의 랍비였으며 예수님을 따르는 바리사이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적대시했던 사람들은 사두가이파였습니다.

 예수님처럼 신앙에 철저하시며 성경에 정통한 분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니코데모도 예수님께 배움을 청하러 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부의 재능으로 성경을 정확히 재해석하여 그대로 실천하셨기에 성경은 '나에 관하여 기록하였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부활로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참 뜻은 단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의 용서'에 있으며 죄를 지었으면 회개하는 것이 성경의 참 뜻이라며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이를 실천하여 내 말이 진실 됨을 부활로 증명하였음을 너희들이 목격하였으므로 이를 실천하고, 전파하여 이 일의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하셨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죄의 용서와 회개가 평화를 이루는 길이며, 또 그 길만이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길임을 새로이 선포하시고 이를 부활로 증명하였습니다. 루카복음서에서의 부활은 이렇듯 예수님의 말씀은 진실 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목적으로 기록하였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로 약속한 이상, 부활이 실제적 사실인지 아니면 신앙적 기록인지를 굳이 분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죽은 육신이 다시 부활할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어서 예수님을 따르던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이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던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약속한 이상, 파기할 수 없는 그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음을, 오늘도 영세 때의 그 초심을 새롭게 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성경을 재해석하여 이를 실천하셨기에
이단으로 정죄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성자께서 종교에 의해 희생되셨듯이
그 후, 인류의 역사 또한 종교에 의해 무수한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이를 깨달지 못한 불쌍한 저희를 굽어 살펴주시어
모든 종교적 갈등만이라도 해소되어 저희들에게도, 이 땅에도, 온 지구촌에도
항구적인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부디 성령님의 지혜로 저희 모두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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