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제1독서(예레2,1~3.7~8.12~1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26 조회수1,520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제1독서(예레2,1~3.7~8.12~13)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 이스라엘은 주님께 성별된 그분 수확의 맏물이었다.  그를 삼키는 자들은 누구나 벌을 받아 그들에게 재앙이 닥쳤다.  주님의 말씀이다." (2~3)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2)

 

예레미야서 2장 2~3절은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 태동기, 즉 출애굽 광야 시대에하느님과 선민 사이의 순결하고 복된 사랑과 보호의 관계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즉 시간상으로 아주 먼 옛날로 돌아가 이스라엘의 민족적 형성기인 출애굽 시대를 회상하는 내용인 것이다.

 

여기서 출애굽 시기는 인생의 태아기로부터 노년기에 이르는 기간 중에서 가장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는 시기인 청년기, 즉 혼기에 접어든 성숙한 여성에 비유되고 있다.

그리고 '네 젊은 시절의 순정' '신부 시절의 사랑'은 그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보다 강조하기 위한 반복적 표현이다.

 

여기서 '네 젊은 시절'이란 구체적으로 '신부 시절'을 가리키는 것이며, '사랑''순정'과 동의어이다.

특히 '신부 시절'이라는 의미의 '켈룰로타이크'(kelulothaik)의 원형 '켈룰라'(kelula)는 구약에서 오직 본절에서만 사용되는 명사로서 '신부''며느리'를 의미하는 명사 '칼라'(kala)에서 유래하였으며, 결혼 자체의 의미보다는 '신부의 상태나 조건' 나타낸다.

 

따라서 본절에서 '사랑''아하바'(ahaba)는 결혼 생활을 통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결혼을 앞둔 약혼 상태에서 오고 가는 순수하고 달콤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회에서 약혼은 법적으로 결혼과 같은 효력을 갖기 때문에 (창세19,14; 탈출22,16; 마태1,18) 본절의 표현은 혼인 계약을 전제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본절의 '순정'(hesed) '사랑'(ahaba)라는 표현을 두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사랑하였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하느님께서 그 깊으신 뜻 가운데 많은 민족들 중에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선택하시고 출애굽 사건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시므로 값없이 먼저 사랑하셨고, 또한 그들과 영원한 사랑의 계약을 체결하셨다는 사실에서 이것은 분명 하느님의 순정과 사랑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시 하느님께 순종하여 그 사랑의 계약을 소중히 여기고 오직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섬길 것을 맹세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순정과 사랑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문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사랑의 친교(교감)전체를 통틀어 언급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너는 광야에서 씨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

 

앞서 말한 '네 젊은 시절의 순정' '신부 시절의 사랑'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시기로부터 광야 생활까지를 통틀어 언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문은 그때에 그들은 경작하거나 추수할 수도 없는 광야에서 오직 하느님만 의지하여 살았음을 하느님 편에서 회상하시는 내용으로 묘사된다.

 

당시 그들의 신앙은 '나를 따랐다'란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즉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신앙에 대해 그림자처럼 당신을 떠나지 않고 철저하게 따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문은 결혼의 계약 안에서 신랑이 신부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처럼, 아무런 소출도 없는 광야에서 남편이신 하느님께서 신부인 이스라엘의 필요를 공급하셨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신부가 자신의 공급자인 신랑을 따르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자신의 공급자이며 자신의 영적 남편이신 하느님을 신실하게 따르고 의지했던 것이다.

 

이처럼 과거의 신실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회상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이 말씀을 듣는 청중들인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선민들로 하여금 지금도 여전히 이스라엘과의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고 계신 그들의 보호자 주님을 기억하고 옛 이스라엘처럼 이제 신실한 백성이 되라는 도전과 격려의 메시지 전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스라엘은 주님께 성별된 그분 수확의 맏물이었다.  그를 삼키는 자들은 누구나 벌을 받아 그들에게 재앙이 닥쳤다.  주님의 말씀이다.'(3)

 

본절에서 '주님께 성별된''그분 수확의 맏물'이스라엘의 거룩함을 강조하기 위해 대구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대구를 통해 이스라엘이 선택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의 산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성별된'이라는 의미의 '코데쉬'(qodesh)'거룩하게 하다', '구별하다' 라는 의미의 동사 '카다쉬'(qadash)에서 유래하였으며, 하느님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된 것을 가리킨다.

 

성경에 나타난 '거룩함'의 본질은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시는 하느님 자신이시다(레위19,2).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속성으로서의 거룩함(탈출15,11)을 갖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도 성별된 거룩한 이름이며(1역대29,16), 또한 하느님께 속한 성별된 것들도 거룩하다.

 

예를들어 안식일을 다른 6일과 구별하여 거룩한 날로 정하셨다(탈출16,23). 또한 '코데쉬'를 이중으로 사용하여 '거룩한 것들 중에 거룩한 것' (qodesh haqqodasim ; 코데쉬 학코다쉼)이라고 표현되는 지성소하느님을 위해 구별된 장소이므로 거룩하였다(탈출26,33).

이외에도 '거룩한 옷'(탈출40,13), '거룩한 제단'(탈출40,10), '거룩한 성별 기름'(탈출37,29), '거룩한 땅'(탈출3,5), '거룩한 일'(탈추36,4) 등  하느님을 위해 구별된<성별(聖別)된>많은 거룩한 것들이 존재하였다.

 

이스라엘도 특별히 하느님께서 많은 민족들 중에서 선택하셔서 구별하셨기 때문에(신명7,6) '거룩한 백성'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었다.

특히 2절과 함께 3절의 '주님께 성별된'이란 표현은  하느님께서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모든 민족들 중에서 선택하여 당신 백성들 삼으셨다탈출기 19장 4~6절의 내용 연상케 한다.

 

한편, '맏물'(첫 열매)에 해당되는 '레쉬트'(reshith)소출로서는 첫 수확이나 최상의 상품을 나타낸다.

하느님의 백성은 제정된 제사 규정에 따라 해마다 처음 익은 열매를 제일 먼저 하느님께 드려야 했다(탈출23,19; 민수3,13).

 

이처럼 '맏물'(첫 열매)을 드리는 행위는 '하느님께서 모든 소출(소산)의 주인이심' 표현하는 신앙 고백에 빗댈 수 있는 것이었다(민수18,12~18).

 

그런 점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맏물'(첫 열매)이라고 칭하신 것은 하느님의 소유로 구별하셨다는 성별(聖別)의 의미하느님을 위해 가장 좋은 열매로 엄선하셨다는 최상의 선택의 의미를 내포한다(레위2,12; 23,10).

그러나 과거 이스라엘의 이러한 상태와 현재 상태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따라서 본문의 표현은 현재 이스라엘은 우상을 따라가기 때문에 주님께 속하지도 거룩하지도 않으며,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고발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삼키는 자들은 누구나 벌을 받아 그들에게 재앙이 닥쳤다'

 

본문은 하느님께서 성별된 이스라엘의 수호자였음을 보여준다.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거룩한 것을 접촉하거나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었다. 대사제의 임직식에 사용된 제물은 대사제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 먹도록 제한되었다(탈출29,33.34).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드린 제물은 사제와 레위인들만 먹을 수 있었다 (레위7,6~14; 신명18,3.4). 사제나 그 가족이라도 부정한 사람은 제물로 드려졌던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레위22,6). 또한 사제의 집에 함께 거할지라도 외국인이나 객이나 품팔이꾼은 거룩한 예물을 결코 먹지 못했다(레위22,10).

이와같이 하느님을 위해서 구별된 거룩한 예물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한도내에서만  접촉하거나 먹을 수 있었다.

 

한편, 본문은 누구든지 하느님의 거룩한 예물을 더럽힌다면, 하느님께서 자신의 거룩함이 침해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징벌을 받게 됨을 선언한다(레위22,15.16).

 

이방 민족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인 이스라엘을 침범하여 삼킨다면, 아말렉족이 징벌을 받았던 것처럼(탈출17,8~16)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의 거룩함을 위해 징벌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리아 제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바빌론 제국도 비록 징계의 채찍으로서  남부 유다를 침략하는 것이 허용되었을지라도, 그들은 결국 멸망의 징벌을 받는 것이다(예레51,1~3; 54~56).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무조건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거룩함을 상실하여 더 이상 주님을 위한 거룩한 백성이 아니라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오히려 그 백성이 이방인처럼 거룩함을 상실하고 이방 신들을 따라간다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거룩함을 위해 그들을 그 땅에서 추방하고 이방인처럼 취급하여 당신 자신의 명예를 지키실 것이라는 암시가 본절에 들어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거룩함을 위해 외부의 적들 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들 또한 물리치시는 분이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